[묵상] 2026년 9월 10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우리는 살면서 "내가 옳다", "내 말이 맞다"는 확신 때문에 오히려 가까운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관계를 망쳐버린 경험이 있으십니까? 내가 가진 지식과 옳음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을 때, 그것은 상대를 찌르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곤 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내 지식과 옳음을 내세우기보다, 형제의 약함을 배려하는 사랑 그리고 그 사랑을 넘어 원수까지도 품어안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로 갈등하던 코린토 신자들에게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신앙적 지식으로는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므로 제물을 먹는 것이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양심이 약한 형제를 엇나가게 하거나 족쇄가 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일입니다.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성장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1코린 8,1.13).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자유나 지식보다 '형제의 영혼을 살리는 사랑'을 최우선에 두었습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계산법을 뛰어넘는 혁명적인 사랑의 계명을 선포하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잘해 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며, 너희를 학대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루카 6,27-28).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잘해 주는 이에게만 잘해 주는 것은 세속의 사람들도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는 보답을 바라지 않고 거저 주며,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두 말씀이 만나는 교차점은 바로 ‘내 중심의 삶에서 하느님 중심, 이웃 중심의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내가 아무리 옳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 안에 사랑이 없으면 타인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도구가 됩니다. 참된 신앙은 내가 가진 권리나 자유를 기꺼이 포기하면서까지 약한 형제를 배려하는 것이며, 나에게 해를 입힌 원수마저도 하느님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고 말씀하신 이유는, 하느님께서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동등하게 햇빛과 비를 내려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비를 베풀 때, 비로소 우리는 하느님의 참된 자녀가 됩니다.

치열한 경쟁과 비교 속에서 살아가는 바쁜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늘 이렇게 속삭입니다. "손해 보지 마라", "너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는 그대로 되돌려주어라", "네가 옳다는 것을 끝까지 증명해라."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약속하십니다. “주어라. 그러면 너희도 받을 것이다.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담아 주실 것이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내가 먼저 옳다는 고집을 내려놓고, 먼저 손을 내밀고 용서할 때, 주님께서는 세상이 줄 수 없는 천상의 평화와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우리를 살리는 것은 정교한 지식이나 세상의 비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온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입니다. 내가 가진 지식으로 교만해지지 않고, 약한 형제를 위해 내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내 마음의 그릇을 넓혀 원수까지도 품어안으셨던 주님의 자비를 닮아갑시다. 우리가 남을 심판하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을 줄 때, 주님께서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당신의 은총과 기쁨을 우리 품에 가득 안겨주실 것입니다. 연중 제23주간의 남은 날들이 주님의 자비로 가득 차기를 마음 모아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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