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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1월 7일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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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조금만 더 가지면 편안할 텐데", "이것만 채워지면 아무 걱정이 없을 텐데" 하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손에 쥐려 애쓰곤 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물질과 통장의 잔고가 삶의 안전판이자 힘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주인이 과연 누구인지를 단호하고도 명확하게 질문하십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루카 16,13).  오늘 말씀은 주님 대전에서 과연 내 마음의 중심에 하느님이 계신지, 아니면 세상의 재물과 안락함이 자리 잡고 있는지 겸손히 성찰하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감옥에 갇힌 궁핍한 처지 속에서도 신비롭고 위대한 신앙의 비결을 고백합니다. 그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알며,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모든 사정에 적응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웠다고 말합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필리 4,13).  바오로 사도에게 참된 힘과 평화는 세상의 물질이나 풍요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힘을 북돋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만들어 영원한 거처를 준비하라고 권고하시며, 영적 청지기의 기본 원리를 선언하십니다.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한 사람은 큰일에도 성실하고,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큰일에도 불의하다” (루카 16,10).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자, 주님께서는 “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 하고 그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십니다. 바오로 사도...

[묵상] 2026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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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후를 대비하고 집을 마련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는 참으로 밝고 기민하게 움직입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부동산과 재테크의 흐름을 살피며 손해 보지 않으려고 온갖 지혜를 동원합니다. 세상살이의 안전을 지키는 데는 이토록 빈틈이 없으면서도, 정작 하느님 앞에 서게 될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데는 얼마나 슬기로운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 해고될 위기에 처한 집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약삭빠른 지혜를 빗대어 우리 영혼의 중심을 흔드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루카 16,8).  오늘 말씀은 눈앞의 세상살이에만 매여 살아가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며, 우리의 참된 본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지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눈물을 흘리며 신자들에게 호소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원수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은 파멸이 그들의 끝이요, 배를 하느님으로 삼고 수치를 영광으로 알며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 ” (필리 3,20).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굴복시키실 수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해 주실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리한 집사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 쫓겨날 처지에 놓이자,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워 궁리를 합니다. 그는 주인의 빚진 이들을 하나씩 불러 빚문서를 감면해 줍니다. 훗날 자신이 쫓겨났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주인은 이 불의한 집사가 영리하게 대처했다고 칭찬합니다. 예...

[묵상] 2026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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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아끼는 소중한 물건이나 지갑  혹은 열쇠를 잃어버려 온 집안을 샅샅이 뒤지고 가슴을 졸여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손에 다시 쥐었을 때 차오르는 안도감과 기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압니다. 하물며 물건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 자녀나 가족을 길에서 잃어버렸다면, 그 부모의 타는 심정은 과연 어떠하겠습니까?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죄인들과 어울려 음식을 드시는 예수님을 보며 투덜거리자, 주님께서는 목자의 심장으로 천국의 신비를 들려주십니다.  “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 (루카 15,4-6).  오늘 말씀은 주님 대전에서 방황하고 길을 잃은 나 한 사람을 찾아 오늘도 쉬지 않고 걸으시는 하느님의 애타는 사랑을 깨닫게 해 줍니다. 오늘 제1독서 에서 바오로 사도는 세상 사람들이 내세우는 겉모습과 출신 배경의 허망함을 고백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이자 벤야민 지파 출신이며, 율법으로는 흠잡을 데 없는 바리사이였습니다. 인간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는 화려한 스펙과 의로움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 (필리 3,7-8).  바오로 사도에게는 세상의 자랑과 율법의 명예보다,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의 사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