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11일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이미지
오늘은 유럽의 수호성이자 서방 수도 생활의 아버지이신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성인의 유명한 모토인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는 오늘날 분주함과 불안 속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신앙의 중심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명확히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거센 반대와 박해 앞에 서 있는 제자들을 향해 거듭해서 강하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마태 10,26-27) . 세상은 때로 진실을 왜곡하고, 선하게 살려는 이들을 모함하며, 복음의 가치를 어둠 속에 가두려 합니다. 박해자들의 힘이 너무나 거대해 보여 신앙인들은 때때로 위축되고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주님은 선포하십니다. 악의 승리는 일시적일 뿐이며, 하느님의 공정과 진리는 반드시 온 세상 밝은 빛 아래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 눈앞의 불이익이 두려워 진리와 타협하거나 숨기지 말고, 주님의 말씀을 당당하게 삶으로 외치라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우리가 품어야 할 두려움의 대상을 바로잡아 주십니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마태 10,28). 우리가 세상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세상이 나의 재물이나 건강, 평판, 심지어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은 고작 우리의 ‘육신’에만 손을 댈 수 있을 뿐, 우리 영혼의 영원한 생명은 결코 건드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경계해야 할 것(거룩한 경외심)은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고 영혼이 메말라가는 일입니다. 주님은 참새 두 마리가 단돈 한 닢에 팔리는 사소한 일도 하느님의 허락 없이...

[묵상] 2026년 7월 10일 연중 제14주간 금요일

이미지
  오늘 전례의 말씀은 험난한 세상 속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지녀야 할 현실적인 지혜와 함께, 우리가 언제나 삶의 닻을 내려야 할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에 대해 들려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매우 현실적이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 (마태 10,16). 주님은 신앙의 길이 결코 평탄한 꽃길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이기심과 시기, 물질주의 등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이리 떼 같은 가치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 말씀대로 순수하게 살아가려는 신앙인은 때로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손해를 보고, 심지어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조차 오해와 미움을 받기도 합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주님이 제시하신 처방전은 바로 이것입니다.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순박하게 되어라” (마태 10,16). 뱀 같은 슬기로움은 악한 세상의 유혹과 음모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입니다. 무조건 착하기만 해서 세상의 꾐에 쉽게 넘어가는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무엇이 하느님의 뜻이며 무엇이 악의 유혹인지 명확히 분별하는 지혜를 뜻합니다. 비둘기 같은 순박함은   세상의 수단에 물들지 않는 마음의 순수함입니다. 세상을 분별하되 나 또한 세상처럼 똑같이 영악해지거나 남을 속이지 않고, 오직 하느님만을 신뢰하는 깨끗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슬기로움만 추구하다가 영악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되며, 순박함만 고집하다가 대책 없이 당하는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이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 우리는 세상 한가운데서도 복음의 향기를 풍길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우리를 법정에 넘기고 채찍질할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걱정하지 말라고 다독이십니다. 박해의 순간에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느님께서 직접 일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

[묵상] 2026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이미지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눈물겨운 사랑 고백과 함께, 그 거대한 사랑을 체험한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선명히 제시해 줍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기저에는 ‘거저 받은 은총’이라는 따뜻하고도 강렬한 복음의 진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구약 성경을 통틀어 하느님의 부성애(父性愛)가 가장 아름답고도 애절하게 묘사된 대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중한 ‘어린아이’로 부르시며, 그들을 키워낸 세월을 추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 (호세 11,1.3). 하느님은 인정 많은 농부처럼 이스라엘의 목에서 멍에를 쳐들어 주셨고, 허리를 굽혀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풍요를 누리게 되자 하느님을 잊고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정의대로라면 멸망시켜야 마땅하지만, 하느님은 차마 당신 자녀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 (호세 11,8-9).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본모습입니다. 우리의 배반보다 당신의 사랑이 더 커서, 스스로 당신의 마음을 꺾고 용서하시는 애끓는 사랑, 우리는 모두 이 사랑을 ‘거저’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신앙인이 지녀야 할 가장 순수한 태도를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태 10,8). 우리가 누리는 생명과 신앙, 자연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 중 우리 힘으로 벌어서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일을 할 때 대가를 바라거나 세속적인 이익을 챙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묵상] 2026년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이미지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 신앙의 ‘회복’과 ‘새로운 출발’에 대해 강력하게 일깨워 줍니다.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풍요로움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진 이들을 향해 영적인 개간을 촉구하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범하고 약점 많은 이들을 부르시어 하느님 나라의 강력한 전령으로 파견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열매가 풍성한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우상의 제단을 만들었고, 땅이 비옥해질수록 석상들을 더욱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축복을 오히려 죄를 짓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 (호세 10,2 참조)라고 진단합니다. 방치해 둔 밭이 시간이 지나면 잡초가 무성해지고 딱딱하게 굳어버리듯, 우리의 마음도 세상의 안락함과 이기심에 길들여지면 ‘묵은 땅’이 되어 버립니다. 말씀의 씨앗이 도저히 뿌리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언자는 간절히 외칩니다.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 (호세 10,12). 신앙의 회복은 내 마음에 굳어진 고집과 이기심의 흙덩이를 주님의 십자가로 갈아엎는 ‘불편한 수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의 밭을 갈아엎은 자리에 주님은 당신의 일꾼들을 세우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열두 제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며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명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성격이 불같았던 베드로와 요한, 로마의 앞잡이로 손가락질받던 세리 마태오, 그리고 로마를 무력으로 쫓아내려던 혁명당원 시몬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한자리에 섞일 수 없고, 배움도 부족하며 허물 많은 평범한 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완벽한 사람들을 골라 쓰신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이들을 불러 당신의 능력으로 완벽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

[묵상] 2026년 7월 7일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이미지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인생의 밭에 무엇을 심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를 바라보시는 주님의 시선이 얼마나 깊은 자비로 가득 차 있는지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제1독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잊은 채 헛된 우상에 열중하다 파멸을 향해 가고 있지만, 복음의 예수님은 그런 인간들의 나약함과 방황을 보시며 깊은 연민의 마음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이스라엘의 영적 타락을 준엄하게 꾸짖으십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뜻을 여쭈어보지도 않은 채 제멋대로 지도자들을 세웠고, 자신들이 가진 금과 은으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본말이 전도된 그들의 삶을 한 문장으로 엄중하게 요약하십니다.  “그들이 바람을 심고 회오리바람을 거두리라” (호세 8,7). ‘바람’은 눈에 보이지도, 손에 잡히지도 않는 허무한 존재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재물과 권력, 세상의 쾌락이라는 ‘허무한 바람’을 인생에 심은 결과는 참혹합니다. 그것은 결국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날려버릴 파멸의 ‘광풍(狂風)’이 되어 돌아올 뿐입니다. 아무리 화려한 제단을 많이 쌓아 올려도 그 중심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곳은 신앙의 자리가 아니라 죄를 짓는 자리가 될 뿐이라는 성경의 경고를 우리는 뼈아프게 새겨야 합니다. 복음에서 사람들은 말못하는 마귀 들린 이를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예수님께서 마귀를 쫓아내시자 비로소 그 사람이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군중은 이 기적에 찬사를 보냈으나, 마음이 뒤틀린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며 주님의 선행을 악의적으로 왜곡합니다. 말을 못 하게 만드는 마귀는 오늘날 우리 안에도 교묘한 모습으로 찾아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입으로 감사의 노래와 찬미의 말, 이웃을 살리는 위로의 말은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게 가로막으면서, 불평과 시기, 남을 깎아내리는 독한 말은 거침없이 쏟아내게 만듭니다. 바리사이들처럼 눈앞의 진리와 선을 보고도 이를 부정하...

[묵상] 2026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이미지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 고백과 함께, 그 사랑이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 우리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그로 인한 생명의 회복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마치 열렬한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다가오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잊고 세상의 우상인 바알을 쫓아 영적으로 가출해버렸을 때에도, 하느님의 선택은 징벌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사랑’이었습니다.  “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 (호세 2,16.21). 하느님은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는 세상의 화려함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척박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음이 사라졌기에 역설적으로 오직 하느님의 목소리만 또렷이 들리는 ‘은총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실패나 고독이라는 광야를 지날 때,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깊이 속삭이기 위해 우리를 따로 부르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인생의 가장 깊은 광야를 걷던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여인과, 금방 숨이 넘어간 어린 딸을 둔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군중의 벽을 뚫고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댑니다. 여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굳건한 믿음뿐이었습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 (마태 9,21). 당시 율법으로는 부정한 여인이 타인에게 손을 대면 상대방도 부정해지지만, 이 여인은 자신의 부정이 예수님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함이 자신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줄 것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