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눈물겨운 사랑 고백과 함께, 그 거대한 사랑을 체험한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그 길을 선명히 제시해 줍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기저에는 ‘거저 받은 은총’이라는 따뜻하고도 강렬한 복음의 진리가 흐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구약 성경을 통틀어 하느님의 부성애(父性愛)가 가장 아름답고도 애절하게 묘사된 대목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당신의 소중한 ‘어린아이’로 부르시며, 그들을 키워낸 세월을 추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였을 때에 나는 그를 사랑하여 나의 그 아들을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내가 에프라임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내 팔로 안아 주었지만 그들은 내가 자기들의 병을 고쳐 준 줄을 알지 못하였다”(호세 11,1.3).
하느님은 인정 많은 농부처럼 이스라엘의 목에서 멍에를 쳐들어 주셨고, 허리를 굽혀 먹을 것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풍요를 누리게 되자 하느님을 잊고 우상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정의대로라면 멸망시켜야 마땅하지만, 하느님은 차마 당신 자녀를 버리지 못하십니다. “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호세 11,8-9). 이것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의 본모습입니다. 우리의 배반보다 당신의 사랑이 더 커서, 스스로 당신의 마음을 꺾고 용서하시는 애끓는 사랑, 우리는 모두 이 사랑을 ‘거저’ 받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신앙인이 지녀야 할 가장 순수한 태도를 명령하십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우리가 누리는 생명과 신앙, 자연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 중 우리 힘으로 벌어서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일을 할 때 대가를 바라거나 세속적인 이익을 챙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길을 떠날 때 금도, 은도, 여벌 옷도 가지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고생을 자처하라는 뜻이 아니라, 세상의 수단이나 인간적인 계산에 의지하지 말고 나를 먹이시는 하느님의 섭리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라는 초대입니다. 내 주머니를 비워야만 그 자리에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와 권능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든 먼저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라고 하십니다. 그 평화는 자격이 있는 이에게는 머물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세상의 반응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복음을 환대하든 배척하든, 제자들은 그저 하느님께 받은 사랑과 평화를 쉼 없이 흘려보내는 통로가 되면 그뿐입니다. 설령 배척당하더라도 발의 먼지를 털어버릴지언정, 마음에 미움이나 원망을 담아두지 않는 초연함이 진정한 전도자의 자세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메마르고 계산적으로 변하는 이유는 거저 받았다는 은총의 신비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내 지갑과 마음의 주머니를 세상의 욕심으로 가득 채우고 있기에,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화가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목의 멍에를 쳐들어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손길을 느껴봅시다. 내 힘과 능력을 의지하려던 교만의 주머니를 비우고, 만나는 모든 이에게 대가 없는 미소와 평화의 인사를 건넵시다. 우리가 비워질 때, 주님께서는 우리 삶을 당신의 놀라운 은총으로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아버지 하느님, 저희가 어릴 때부터 걸음마를 가르치시고 품에 안아 기르시며 거저 베풀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하나이다. 저희가 세상의 계산법에 갇혀 인색하게 살지 않게 하시고,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하신 말씀대로 저희의 시간과 사랑을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누게 하소서. 인간적인 도구에 의지하기보다 오직 당신의 섭리만을 신뢰하며, 오늘 저희가 머무는 모든 곳에 당신의 평화를 심는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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