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하느님을 사랑하는 유일한 증거

성탄 시기의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는 목요일입니다. 오늘 전례는 우리 신앙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 곧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에 대해 명확한 답을 제시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직설적인 화법으로 우리를 일깨웁니다.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

‘거짓말쟁이’라는 표현이 참으로 무겁게 다가옵니다. 요한 사도의 논리는 단순하지만 반박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합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기도를 많이 하고, 헌금을 내면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신심 깊은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단호합니다. 내 바로 옆에 있는 가족, 직장 동료, 마음에 들지 않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의 신앙 고백은 허공에 흩어지는 거짓말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그 모델이 바로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 들어가셔서 이사야 예언서를 펴 드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명을 선포하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느님을 사랑하러 왔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가난한 이, 묶인 이, 눈먼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을 치유하고 해방시키는 것으로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향해 있었지만, 그분의 손과 발은 언제나 ‘보이는 사람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의 절정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여기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오늘’입니다. 사랑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저 사람이 먼저 사과하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바로 ‘오늘’ 실천되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먼 미래의 약속이 아니라, 내가 오늘 누군가를 용서하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을 건네는 그 순간에 이루어지는 현실입니다.

2026년 새해, 우리가 세운 수많은 계획 중에 형제를 사랑하는 일이 빠져 있다면, 우리는 아직 하느님을 제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람들은 우리를 통해 하느님을 봅니다. 오늘 하루, 내 눈에 보이는 형제자매를 사랑함으로써,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1요한 4,21). 이 계명을 ‘오늘’ 이루는 복된 하루 되십시오. 아멘.

댓글

  1. 하느님 감사합니다. 이 준 대건안드레아 신부님의 평화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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