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2월 2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


절망의 그루터기에서 피어나는 희망의 새싹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아주 인상적이고 상징적인 이미지 하나를 보여줍니다. 바로 ‘이사이의 그루터기’입니다. 그루터기가 무엇입니까? 커다란 나무가 베어지고 남은 밑동입니다. 숲에서 그루터기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그것은 ‘끝’을 의미합니다. 한때 웅장했던 생명이 잘려 나간 흔적이며, 더 이상 자라날 수 없는 죽음과 절망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이 그랬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다윗 왕조는 끊어진 것 같았으며, 백성들은 희망을 잃고 잘려 나간 밑동처럼 남겨졌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죽은 것 같은 그루터기에서 놀라운 일을 시작하십니다. "이사이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움트리라"(이사 11,1).

가장 낮고 비천한 곳, 모두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그 자리에서 푸르른 새 생명이 돋아납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세상은 화려하고 높다란 나뭇가지에 주목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잊혀진 뿌리와 그루터기에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십니다. 이 햇순이 바로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즐거워하시며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루카 10,21). 여기서 ‘지혜롭다는 자들’은 누굴까요? 겉보기에 무성한 나뭇가지처럼 자신을 뽐내는 이들, 자신의 지식과 힘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교만한 이들입니다. 그들의 눈에는 보잘것없는 그루터기에서 피어난 새싹, 곧 가난하고 겸손하게 오신 예수님이 구원자로 보이지 않습니다.

반면 ‘철부지들’은 누구입니까?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이들, 잘려 나간 그루터기처럼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오직 하느님만을 의지하는 겸손한 영혼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이들에게 당신의 신비를 드러내 보이십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 이사이의 그루터기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해서, 건강을 잃어버려서 혹은 인간관계가 깨져서 내 인생이 통째로 베어 나간 것 같은 참담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이제 다 끝났구나. 나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어?’라며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외칩니다. “아니오,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희망이 시작되는 곳입니다.”

우리가 나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할 때, 곧 우리가 영적인 철부지가 될 때, 우리라는 그루터기 위에 주님의 영이 머무르기 시작합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지혜와 슬기의 영, 경륜과 용맹의 영, 지식의 영과 주님을 경외하는 영"(이사 11,2 참조)이 우리 위에 내려앉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던 용서가 가능해지고, 절망 속에서도 찬미가를 부를 수 있게 되며, 메마른 삶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 겉으로 드러난 나의 조건이나 성과가 초라해 보일지라도 실망하지 맙시다. 오히려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교만을 버리고, 어린아이처럼 단순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봅시다. “주님, 저는 잘려 나간 그루터기처럼 보잘것없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생명이 제 안에 있기에, 오늘도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음을 믿습니다.” 이 믿음 안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누리는 하루 되시길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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