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8일 연중 제14주간 수요일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 신앙의 ‘회복’과 ‘새로운 출발’에 대해 강력하게 일깨워 줍니다.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풍요로움 속에서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진 이들을 향해 영적인 개간을 촉구하고,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평범하고 약점 많은 이들을 부르시어 하느님 나라의 강력한 전령으로 파견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열매가 풍성한 포도나무’에 비유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풍요로워질수록 더 많은 우상의 제단을 만들었고, 땅이 비옥해질수록 석상들을 더욱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하느님이 주신 축복을 오히려 죄를 짓는 도구로 사용한 것입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그들의 마음이 거짓으로 가득 차 있다”(호세 10,2 참조)라고 진단합니다.
방치해 둔 밭이 시간이 지나면 잡초가 무성해지고 딱딱하게 굳어버리듯, 우리의 마음도 세상의 안락함과 이기심에 길들여지면 ‘묵은 땅’이 되어 버립니다. 말씀의 씨앗이 도저히 뿌리내릴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언자는 간절히 외칩니다. “너희는 정의를 뿌리고 신의를 거두어들여라. 묵혀 둔 너희 땅을 갈아엎어라. 지금이 주님을 찾을 때다, 그가 와서 너희 위에 정의를 비처럼 내릴 때까지”(호세 10,12). 신앙의 회복은 내 마음에 굳어진 고집과 이기심의 흙덩이를 주님의 십자가로 갈아엎는 ‘불편한 수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의 밭을 갈아엎은 자리에 주님은 당신의 일꾼들을 세우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열두 제자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시며 그들을 파견하십니다. 명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많습니다. 성격이 불같았던 베드로와 요한, 로마의 앞잡이로 손가락질받던 세리 마태오, 그리고 로마를 무력으로 쫓아내려던 혁명당원 시몬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도저히 한자리에 섞일 수 없고, 배움도 부족하며 허물 많은 평범한 이들이었습니다. 주님은 완벽한 사람들을 골라 쓰신 것이 아니라, 부족한 이들을 불러 당신의 능력으로 완벽하게 채워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강력한 ‘권한’을 주시며, 먼저 이스라엘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선포해야 할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10,7).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셨듯이, 오늘 우리 각자의 이름도 똑같이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는 흔히 “성경을 잘 몰라서” 혹은 “수양이 부족해서” 주님의 일을 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의 열두 제자가 증언하듯, 중요한 것은 내 능력이 아니라 나를 부르신 분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내 마음의 묵은 땅을 갈아엎고 주님 앞에 설 때, 주님은 우리에게도 세상의 악과 맞서 싸우고 지친 이들을 위로할 영적인 권능을 가득 부어주실 것입니다.
하늘나라는 거창한 신학 이론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묵은 땅 같았던 내 마음을 주님의 자비로 갈아엎고, 내 삶의 자리에서 따뜻한 미소와 용서의 한마디를 건넬 때 바로 그곳에서 하늘나라가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내 안의 완고함을 뉘우치며 주님의 이름을 부릅시다. 지금이 바로 주님을 찾을 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마음의 밭을 부드럽게 적셔주시고, 우리를 통해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실 것입니다.
“부르심의 주님, 저희가 세상의 풍요와 편안함에 눈이 멀어 마음의 밭을 황폐하게 내버려 두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저희의 완고한 마음을 당신의 사랑으로 갈아엎어 주시어, 정의와 자애의 싹이 돋아나게 하소서. 허물 많은 제자들을 불러 쓰셨듯이 부족한 저희도 당신의 도구로 택해 주셨으니, 오늘 저희가 보내진 삶의 자리에서 ‘하늘나라의 가까움’을 당당히 증언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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