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6일 연중 제14주간 월요일
새로운 한 주간을 시작하는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하느님의 뜨거운 사랑 고백과 함께, 그 사랑이 예수님의 손길을 통해 우리 삶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바로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그로 인한 생명의 회복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마치 열렬한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다가오십니다.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잊고 세상의 우상인 바알을 쫓아 영적으로 가출해버렸을 때에도, 하느님의 선택은 징벌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사랑’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그 여자를 달래어 광야로 데리고 가서 다정히 말하리라. 나는 너를 영원히 아내로 삼으리라. 정의와 공정으로써 신의와 자비로써 너를 아내로 삼으리라”(호세 2,16.21).
하느님은 우리를 ‘광야’로 데려가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광야는 세상의 화려함도, 의지할 사람도 없는 척박하고 외로운 곳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소음이 사라졌기에 역설적으로 오직 하느님의 목소리만 또렷이 들리는 ‘은총의 자리’가 됩니다. 우리가 인생의 실패나 고독이라는 광야를 지날 때, 그것은 하느님이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당신의 사랑을 깊이 속삭이기 위해 우리를 따로 부르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인생의 가장 깊은 광야를 걷던 두 사람이 예수님을 만납니다. 열두 해 동안이나 하혈증을 앓으며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여인과, 금방 숨이 넘어간 어린 딸을 둔 회당장 야이로입니다.
하혈하는 여인은 군중의 벽을 뚫고 예수님 뒤로 다가가 그분의 옷자락 술에 손을 댑니다. 여인의 마음속에는 오직 한 가지 굳건한 믿음뿐이었습니다. “내가 저분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하여도 구원을 받겠지”(마태 9,21). 당시 율법으로는 부정한 여인이 타인에게 손을 대면 상대방도 부정해지지만, 이 여인은 자신의 부정이 예수님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거룩함이 자신의 부정을 깨끗이 씻어줄 것임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숨은 믿음을 보시고 “딸아, 용기를 내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며 그녀를 축복하십니다.
이어 예수님은 이미 숨이 끊어져 초상집이 되어버린 회당장의 집으로 향하십니다. 사람들은 “저 소녀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었지만, 절망과 냉소가 가득한 그곳에서 예수님은 조용히 아이의 손을 잡으십니다. 죽은 이의 몸을 만지는 것 역시 율법으로는 부정해지는 일이었으나, 생명의 주님이신 예수님 앞에서는 죽음마저 힘을 잃고 물러납니다. 주님이 손을 잡으시니 아이가 일어났습니다. 주님은 부정한 여인의 터치를 허락하셨고, 죽은 아이의 손을 먼저 잡아주심으로써 인간의 법과 한계를 뛰어넘어 상처 입고 죽어가는 영혼을 살려내셨습니다.
참된 신앙은 멀리서 예수님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옷자락을 붙잡고 그분과 깊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오늘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우리와 영원한 사랑의 언약을 맺으시고, 예수님은 직접 손을 내밀어 우리의 아픔을 만져주십니다. 오늘 하루,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이 있다면 숨기지 말고 여인처럼 주님의 옷자락을 붙잡읍시다. 주님과 함께 시작하는 이번 한 주간은 절망이 희망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기적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성실하신 하느님, 저희가 인생의 광야를 걸을 때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오히려 저희 마음에 대고 속삭이시는 당신의 사랑 노래에 귀 기울이게 하소서. 하혈하는 여인처럼, 회당장 야이로처럼 오직 당신만이 저를 살리실 수 있다는 절박한 믿음을 주소서. 오늘 저희의 상처 입은 영혼에 손을 대시어, 저희를 다시 일으켜 세워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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