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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0월 1일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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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교회가 선교의 수호자이자 교회 학자이신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을 지내는 경사스러운 날이며, 성모님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묵주기도 성월을 시작하는 첫날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은 인생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참혹한 비탄 속에서 친지들과 친구들을 향해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 여보게, 나의 벗들이여,  날 불쌍히 여기게나, 불쌍히 여기게나. 하느님의 손이 나를 치셨다네 ” (욥 19,21).  그러나 욥은 절망의 끝자리에서 결코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않고, 신앙 역사상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소망의 고백을 선포합니다. 욥은 살가죽이 다 벗겨지고 육신이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도, 내 구원자께서 살아 계시어 마침내 먼지 위에 서실 것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내 육체가 이렇듯 부서진 뒤에라도 내 눈으로 직접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라는 거룩한 부활의 신앙을 노래합니다. 깊은 시련 속에서도 욥의 눈은 오직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만을 바라보았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 외에 다른 일흔두 제자를 지명하시어, 당신께서 찾아가실 여러 고을로 둘씩 짝지어 앞서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수확할 일꾼들을 보내 주시라고 주인에게 청하라 하시고, 제자들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 (루카 10,5).  제자들은 돈주머니도 자루도 신발도 없이 오직 주님의 말씀과 평화만을 가지고 파견됩니다. 욥이 고통 속에서 바라보았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제 제자들을 통해 온 세상에 참된 하늘의 평화를 선포하게 하시는 순간입니다. 오늘 두 말씀은 ‘나약함 속에서 피어나는 구원의 확신과 복음 선포’라는 은총의 신비를 보여줍니다. 오늘 우리가 기쁘게 기억하는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가르멜 수녀원의 담장 안에서 평생을 사셨지만, 온 세상 선교의 거룩한 보호자가 되셨습니다. 성녀는 폐병이라는 육신의 극심한 ...

[묵상] 2026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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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을 수없이 맞닥뜨립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다짐하면서도, 막상 현실의 편안함이나 미련 때문에 발걸음을 주저했던 적은 없으신지요?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이것부터 정리하게 해주십시오"하고 조건이나 핑계를 대며 신앙의 결단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이들에게, 핑계나 미련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하고 온전한 신앙의 결단 을 요구하십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루카 9,62).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은 극심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지혜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산들을 옮기시고 땅을 흔드시며, 별들을 창조하시고 홀로 하늘을 펼치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인간이 감히 판단할 수 없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경이로움을 고백하며, 하느님 대전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가져야 할 겸손과 순명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세 사람을 만나십니다. 첫째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하시며 세속적인 안락함을 포기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는 둘째 사람에게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사람이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하자, 주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위엄과 절대적 주권을 깨달은 이는, 세속의 안락이나 미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느님 나라를 최우선으로 삼고 나아가야 함을 두 말씀이 함께 비추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냉정이 아니라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복음 선포는 세상의 그 어떤 인간적인...

[묵상] 2026년 9월 29일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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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도저히 제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는 시련을 겪거나 막막한 어둠 속을 걸을 때, 어디선가 불쑥 다가오는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나 마음의 평화를 경험한 적이 있으신지요? 세상 사람들은 그것을 ‘행운’이라 부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인인 우리는 그 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인도하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손길과 천사들의 보호를 깨닫게 됩니다.  오늘 가톨릭교회는 하느님의 거룩한 메신저이자 수호자인 성 미카엘, 성 가브리엘, 성 라파엘 대천사 축일 을 기쁘게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요한 사도는 하늘에서 일어난 거룩한 전쟁을 환시로 바라봅니다. 미카엘 대천사와 그의 천사들이 용과 그의 사자들에 맞서 싸워 승리합니다. 하느님의 권능을 나타내는 미카엘(“누가 하느님과 같으랴?”)의 이름처럼, 악의 세력은 하느님의 자녀들을 결코 이길 수 없으며 마침내 쫓겨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무화과나무 아래 서 있던 나타나엘을 보시고 “보라, 저 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저 사람은 거짓이 없다” 하고 찬양하십니다. 나타나엘이 깜짝 놀라 주님을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와 우리 모두에게 가슴 벅찬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는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천사들이 사람의 아들 위에서 오르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요한 1,51).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늘과 땅을 잇는 참된 사다리이시며, 대천사들은 주님 안에서 우리 삶의 온갖 영적 전쟁과 여정을 돌보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세 대천사는 하느님께서 당신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거룩한 은총의 역사를 상징합니다. “누가 하느님과 같으랴”라는 이름을 가진  성 미카엘은  세속의 유혹과 죄악, 악마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영혼을 지켜주는 '보호와 용기'를 줍니다. “하느님은 나의 힘”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 가브리엘은  성모님께 구세주의 탄생을 알렸듯이, 낙심한 우리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과 구원의 '기쁜 ...

[묵상] 2026년 9월 28일 연중 제26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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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소중히 여기던 건강, 재물, 혹은 사랑하는 사람을 한순간에 잃어버리는 비바람을 맞닥뜨릴 때가 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감당하기 힘든 고통 앞에서 우리는 흔히 "하느님,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하고 원망 섞인 질문을 던지곤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욥은 신앙인 역사상 가장 극심하고 참혹한 시련을 겪은 인물입니다. 그러나 절망의 한가운데서 그가 던진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슴 깊은 울림을 줍니다.  “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욥 1,21). 오늘 제1독서는 의롭고 정직하여 하느님을 경외하던 욥에게 밀려든 갑작스러운 시련을 보여줍니다. 사탄은 욥이 하느님께 받은 복과 재산 때문에 주님을 섬기는 것이라며, 그것들을 치면 하느님 대전에서 주님을 받들지 않을 것이라 장담합니다. 사탄의 시험으로 욥은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잃고 모든 자녀를 잃는 비극을 맞이합니다. 그러나 욥은 옷을 찢고 머리를 깎은 뒤 땅에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하느님을 원망하거나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그들 가운데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권력과 높음을 탐하는 제자들의 속셈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어린아이를 끌어당겨 당신 곁에 세우시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누구든지 이 어린이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사람이야말로 가장 큰 사람이다 ” (루카 9,48).   이어서 사도 요한이 다른 이가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막았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너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하시며 무한한 포용과 겸손을 가르쳐 주십니다. 오늘 두 말...

[묵상] 2026년 9월 26일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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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울을 보며 문득 자신의 얼굴에 깊어진 주름이나 부쩍 줄어든 기력을 깨닫고 만감이 교차할 때가 있습니다. "그 찬란했던 청춘이 언제 이렇게 지나갔을까?", "내 젊음과 활력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이 밀려오곤 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코헬렛의 저자는 우리 인생의 지극히 자연스러우면서도 피할 수 없는 이치를 비추며, 우리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에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할 거룩한 일깨움을 전해줍니다.  “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   먼지는 전에 있던 흙으로 되돌아가고  목숨은 그것을 주신 하느님께로 되돌아간다 ” (코헬 12,1.7). 오늘 제1독서에서 저자는 젊은이들에게 청춘을 즐기고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가라 말하면서도, 그 모든 행위에 대해 하느님께서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어서 나이가 들어 육신이 쇠약해지는 과정을 문학적이고 시적인 비유로 묘사합니다. 집을 지키는 파수꾼(손)이 떨리고, 힘센 사내들(다리)이 구부러지며, 맷돌질하는 여인들(치아)이 줄어 쉬게 되고, 창문으로 내다보는 여인들(눈)이 어두워지는 날이 찾아옵니다. 육신은 마침내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하느님께로 돌아가니, 세상의 자랑과 젊음 또한 결국 허무하다는 고백입니다. 한편,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위대한 일들과 기적을 보고 몹시 놀라며 감탄하고 있었습니다. 세속적인 찬사와 환호가 최고조에 달했던 바로 그 순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슴 서늘한 경고의 말씀을 건네십니다.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루카 9,44).  사람들은 당장의 화려한 기적과 영광에 눈이 어두워졌지만,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인기와 환호라는 허무한 겉모습에 마음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이 걸어가셔야 할 '십자가 수난의 길'과 아버지 하느님의 거룩한 때를 정확히 바라보셨던 것입니다. 오늘 두 말씀은 인간이 지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