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9월 30일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 기념일


우리는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들을 수없이 맞닥뜨립니다. 하느님의 뜻대로 올바르게 살아가고자 다짐하면서도, 막상 현실의 편안함이나 미련 때문에 발걸음을 주저했던 적은 없으신지요? "주님, 제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이것부터 정리하게 해주십시오"하고 조건이나 핑계를 대며 신앙의 결단을 뒤로 미루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이들에게, 핑계나 미련을 허용하지 않는 단호하고 온전한 신앙의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오늘 제1독서에서 욥은 극심한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지혜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 앞에 의로울 수 있겠습니까? 하느님께서는 산들을 옮기시고 땅을 흔드시며, 별들을 창조하시고 홀로 하늘을 펼치시는 분이십니다. 욥은 인간이 감히 판단할 수 없는 하느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경이로움을 고백하며, 하느님 대전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가져야 할 겸손과 순명을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는 세 사람을 만나십니다. 첫째 사람에게 주님께서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하시며 세속적인 안락함을 포기해야 함을 알려주십니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겠다는 둘째 사람에게 "죽은 이들의 장례는 죽은 이들에게 맡겨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여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사람이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하자, 주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적합하지 않다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위엄과 절대적 주권을 깨달은 이는, 세속의 안락이나 미련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오직 하느님 나라를 최우선으로 삼고 나아가야 함을 두 말씀이 함께 비추어 줍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냉정이 아니라 ‘우선 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느님 나라와 복음 선포는 세상의 그 어떤 인간적인 정이나 편안함보다 우선되어야 할 가치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쁘게 기억하는 성 예로니모 사제 학자는 바로 이 말씀에 온 삶으로 응답하신 분입니다. 성인은 세상의 명예와 학문적 재능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고 베들레헴의 광야 동굴로 들어갔습니다. 한평생 금욕과 기도로 자신을 바치며, 은총의 힘으로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거룩한 과업을 완수하셨습니다. 성 예로니모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성인은 세속의 미련을 뒤로하고, 말씀이라는 쟁기에 손을 얹은 채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직진했던 지혜롭고 충실한 일꾼이었습니다.

바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도 "다음에 하겠습니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 신앙생활을 잘하겠습니다"라는 핑계가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지는 않나요? "성당 봉사나 기도를 시작하려 하다가도, 바쁜 직장 일이나 세상의 즐거움 때문에 주저하지는 않나요?" "말씀대로 살아가려 결심했다가도, 손해를 보거나 인내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슬그머니 예전의 편안한 습관으로 돌아가지 않나요?" 

쟁기를 잡은 농부가 자꾸 뒤를 돌아보면 밭고랑은 구불구불해지고 씨앗을 바르게 심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르면서도 세상 것에 미련을 두고 두 마음을 품는다면, 우리 영혼의 밭도 결코 풍요로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 찾아오시어, 세상의 염려와 미련을 내려놓고 당신의 발자국을 똑바로 바라보며 함께 걸어가자고 초대하십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은 세상의 그 어떤 소리보다 존귀하고 가치 있는 구원의 초대입니다. 성 예로니모 사제처럼 말씀의 쟁기를 손에 쥐었다면, 지나온 세상의 미련이나 한계 때문에 뒤를 돌아보며 주저하지 맙시다. 앞서 걸어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보며 담대하게 걸어갑시다. 오늘 하루도 주님의 말씀 안에서 참된 신앙의 기쁨을 찾고, 하느님 나라에 적합한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마음 모아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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