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9월 3일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기념일


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안 된다" 하며 낙담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도 바로 그런 밤을 보냈습니다. 밤새도록 애를 쓰며 그물을 던졌지만, 물고기를 단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부로서의 오랜 경력과 노하우, 피곤함과 허탈감만이 그들의 배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바로 그 지친 삶의 현장에 예수님께서 찾아오시어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루카 5,4).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의지하는 세상의 경험과 지혜가 하느님 앞에서는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를 일깨워 줍니다. “아무도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가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합니다”(1코린 3,18).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날이 밝은 뒤 깊은 물에 그물을 내리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계산과 세속적 지혜를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립니다.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루카 5,5).

이 순종의 결과로 그물이 찢어질 만큼 엄청난 고기를 잡게 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 기적 앞에서 자신이 하느님 대전에 얼마나 나약한 죄인인지를 깨닫고 주님 앞에 엎드립니다. 세상의 지혜를 내려놓았을 때, 하느님의 신비와 거룩함이 그의 삶에 개입하신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깊은 데로 저어 나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얕은 물은 내 능력, 내 경험, 내 상식 안에서만 움직이는 안전지대입니다. 타인과의 비교,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 세상의 계산이 지배하는 곳입니다. 깊은 물은 내 한계를 인정하고 오직 주님의 은총과 말씀만을 의지해야 하는 신뢰의 자리입니다. 내 힘을 빼고 하느님께 내 삶의 키를 맡기는 영적 결단의 자리입니다.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님 역시 로마의 고위 공직자라는 세상의 안정된 지위를 내려놓고 수도자가 되셨으며, 교회의 혼란기 속에서 오직 하느님의 영에 의지하여 교회를 일으켜 세우고 영적 깊이를 더하셨던 분입니다. 자신의 지혜를 버리고 하느님의 깊은 은총 속으로 들어갔을 때, 그분은 교회의 위대한 스승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노력해도 손에 잡히는 것이 없는 것 같은 허무함 속에서 우리는 영적으로 지치기 쉽습니다. 가정생활에서, 자녀 교육에서, 직장이나 본당 봉사에서 "내가 밤새 애썼지만 소용없었다"며 마음의 그물을 거두고 있지는 않습니까? 빈 배와 같은 우리 마음에 예수님께서 오르시며 말씀하십니다. "네 경험과 오만을 내려놓아라", "네 판단에는 끝난 것처럼 보여도, 내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한번 사랑의 그물을 내려보아라."

나의 고집과 상식이라는 얕은 물에 머물기를 고집한다면 결코 하느님의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내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더라도, 용서하기 힘든 이를 향해 다가가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도 기도의 그물을 다시 내릴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빈 배를 은총으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유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1코린 3,23)인 거룩한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내 삶의 빈 배를 바라보며 낙담하지 마십시오. 지금이 바로 주님께서 내 배에 오르시어 영적인 깊은 데로 나아가라 부르시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 말씀에 의지하여 용기 있게 그물을 내림으로써, 우리 영혼이 참된 기쁨과 풍요로움으로 가득 차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묵상] 2026년 10월 7일 묵주기도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

[묵상] 2026년 10월 8일 연중 제27주간 목요일

[묵상] 2026년 10월 12일 연중 제28주간 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