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금요일
우리는 노후를 대비하고 집을 마련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는 참으로 밝고 기민하게 움직입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하고, 부동산과 재테크의 흐름을 살피며 손해 보지 않으려고 온갖 지혜를 동원합니다. 세상살이의 안전을 지키는 데는 이토록 빈틈이 없으면서도, 정작 하느님 앞에 서게 될 영원한 미래를 준비하는 데는 얼마나 슬기로운지 돌아보게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 해고될 위기에 처한 집사의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의 약삭빠른 지혜를 빗대어 우리 영혼의 중심을 흔드는 말씀을 건네십니다.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카 16,8). 오늘 말씀은 눈앞의 세상살이에만 매여 살아가는 우리를 흔들어 깨우며, 우리의 참된 본향이 어디인지, 그리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지 깊이 묵상하게 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눈물을 흘리며 신자들에게 호소합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원수로 여기며 살아가는 이들은 파멸이 그들의 끝이요, 배를 하느님으로 삼고 수치를 영광으로 알며 ‘땅의 일만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구세주로 오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합니다”(필리 3,20).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굴복시키실 수 있는 그 권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변화시키시어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해 주실 분이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영리한 집사의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집사는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다 쫓겨날 처지에 놓이자,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워 궁리를 합니다. 그는 주인의 빚진 이들을 하나씩 불러 빚문서를 감면해 줍니다. 훗날 자신이 쫓겨났을 때 그들의 도움을 받아 살아갈 자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주인은 이 불의한 집사가 영리하게 대처했다고 칭찬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하신 것은 그의 부정직함이 아니라, 위기의 순간에 자신의 미래를 내다보고 결단력 있게 행동한 민첩한 지혜였습니다.
빛의 자녀인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참된 미래는 땅의 소유가 아니라 하늘의 영원한 거처이며, 세상 사람들이 제 살길을 찾아 영리하게 행동하듯 우리 역시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주님이 주신 시간과 재물을 사랑과 자선으로 아낌없이 쓸 줄 알아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오늘 복음의 집사가 깨달은 결정적인 진실은 "내 자리가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집사는 주인의 재산으로 빚진 이들의 짐을 덜어주어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시간, 건강, 재물이라는 은총을 잠시 맡겨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잠시 관리하는 집사에 불과합니다. 언젠가 이 직무를 내려놓아야 할 날이 반드시 찾아옵니다. 세상 사람들은 덧없는 세속의 이익을 위해 온갖 열정을 쏟아붓는데,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위해 얼마나 열렬하게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까?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땅의 일에만 온 정신을 빼앗겨 살아간다면, 우리는 십자가의 은총을 헛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내 손에 쥐어진 것을 움켜쥐지 않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이웃 사랑과 자비로 흘려보내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대전에서 가장 지혜로운 집사입니다.
오늘날 통장의 잔고, 사회적 지위 그리고 아파트 평수에 온 마음을 빼앗긴 채 살아가는 현대 사회 속에서, 우리들의 마음 역시 자칫 영적 시야를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 찾아오시어 말씀하십니다. "네가 가진 것으로 영원한 친구를 만들어라. 사랑으로 베푼 것만이 하늘나라에 영원히 남는다." 우리는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결코 땅에 묻혀 끝날 존재들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저 높은 하늘에 있습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눈이 멀어 영원한 생명을 놓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맙시다. 위기의 순간에 영리하게 결단했던 집사처럼, 우리도 오늘 주님이 주신 삶의 자리에서 사랑과 자비를 민첩하게 실천합시다.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하신 바오로 사도의 드높은 선언을 마음에 품고, 영원한 본향을 향해 기쁨과 슬기로움으로 걸어가는 복되고 은혜로운 날이 되시기를 마음 모아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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