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28일 연중 제17주간 화요일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의 어둠과 아픔을 정직하게 직시하게 합니다. 동시에 그 고단한 현실 너머에 준비된 하느님의 최종 승리와 영광을 약속하며 우리에게 큰 희망을 전해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예레미야 예언자는 참혹한 위기에 처한 조국 유다를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가뭄과 전쟁으로 땅은 메말랐고, 백성들은 굶주림과 칼날 앞에 쓰러져 갑니다. 예언자는 이 비극을 목격하며 하느님의 슬픈 본심을 다음과 같이 대변합니다.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 밤낮으로 그치지 않는다. 처녀 딸 내 백성이 몹시 얻어맞아 너무도 참혹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예레 14,17).
예레미야가 흘리는 눈물은 단순한 절망의 눈물이 아닙니다. 비록 백성들의 죄 때문에 닥친 재앙일지라도, 그들의 아픔을 자신의 등에 지고 하느님 앞에 나아가 “당신의 이름을 보아서라도 저희를 저버리지 마십시오”라고 매달리는 간절한 ‘중재의 눈물’입니다. 우리 삶 역시 때로는 황량한 벌판 같을 때가 있습니다. 내 잘못이나 세상의 모순으로 인해 영적 가뭄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눈물지을 때, 주님은 그 눈물을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자비로운 눈길로 우리와 함께 아파하고 계십니다.
세상에 왜 이토록 아픔과 모순이 가득한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가라지 비유’를 통해 그 영적 비밀을 명확히 설명해 주십니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주님이시고 밭은 세상이며, 좋은 씨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입니다. 하지만 그 밭에는 한밤중 몰래 가라지(악마의 자녀들)를 뿌려놓은 원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느님이 살아계신다면 왜 악인들이 판을 치게 내버려 두실까?” 혹은 “왜 성당 안에서도 상처를 주는 사람이 있을까?”라며 의문을 품습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세상 종말의 날까지는 선과 악이 한 울타리 안에서 함께 자라도록 일단 ‘인내하며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당장 가라지를 뽑으려다가는 그 곁에 있는 소중한 밀(의인들)의 뿌리까지 다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인에게도 회개할 시간을 주시는 하느님의 ‘낭비하는 자비’가 바로 이 기다림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다림이 영원하지는 않습니다. 수확의 때가 오면 주님께서는 불의를 저지르는 자들을 거두어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세상의 소란함 속에 숨겨져 있던 ‘밀들’의 진가가 찬란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빛날 것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3,43). 세상에서는 가라지의 극성에 치여 상처받고, 바보처럼 손해 보며 눈물 흘리던 의인들이었습니다. 아무도 그들의 희생과 기도를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쓸쓸할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시간표가 완성되는 날, 그들은 세상의 그 어떤 별보다 찬란하게,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처럼 눈부시게 빛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거칠어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악의 득세는 일시적일 뿐이며, 최종 승리는 언제나 하느님의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내 힘으로 악을 처단하려 조급해하기보다 묵묵히 주님의 말씀으로부터 영양분을 길어 올려 내 영혼을 알찬 밀로 가꾸어 갑시다. 마침내 해처럼 빛나게 될 그 영광스러운 날을 희망하며 당당하게 걸어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 저희가 세상의 불의와 주변의 가라지들을 보며 쉽게 흔들리고 실망했던 나약함을 용서하소서. 예레미야 예언자처럼 무너진 이웃의 삶을 위해 눈물로 중재 기도를 바치는 성숙한 믿음을 주소서. 세상 종말의 날에 의인들을 해처럼 빛나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가슴에 새겨, 오늘 어떤 시련 속에서도 묵묵히 선을 행하는 올곧은 밀 알갱이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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