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9월 17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큰 은혜나 용서를 받았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며 올라오는 뜨거운 감사와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지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한 고을의 죄인인 여인이 예수님의 발치에 엎드려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닦으며 향유를 바르는 매우 강렬하고 감동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세상의 시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 파격적인 행동 뒤에는, 바로 '무조건적인 용서와 하느님 자비에 대한 깊은 체험'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의 핵심, 곧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선포합니다. 사도는 과거에 교회를 박해했던 자신의 어두운 과거를 숨기지 않고 겸손히 고백합니다. 자신은 사도라 불릴 자격조차 없는 가장 보잘것없는 자이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자신을 바꾸어 놓았음을 선언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총은 헛되지 않았습니다”(1코린 15,10).
한편,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 시몬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했지만, 그를 향한 참된 존경과 사랑의 표현은 건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인인 여인이 다가와 눈물과 향유로 예수님의 발을 모실 때, 마음속으로 예수님과 여인을 단죄하고 심판하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오만한 속셈을 아시고 두 채무자의 비유를 들려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 7,47.50). 사도 바오로가 자신의 나약함과 죄를 깨닫고 오직 '하느님의 은총'으로 사도의 소명을 다했듯, 복음 속 여인 역시 자신의 큰 죄를 용서해 주시는 예수님의 무한한 자비를 깨달았기에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신앙생활의 자리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가슴 깊이 되묻게 합니다. 바리사이 시몬의 자리는 율법을 잘 지키고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리입니다. 그러나 내가 의롭다고 생각할수록 남을 판단하고 단죄하는 독선에 빠지며, 정작 하느님의 은총과 용서의 필요성은 느끼지 못합니다. 죄인인 여인의 자리는 내 허물과 죄를 솔직히 인정하고 주님 대전에 무릎 꿇는 자리입니다. 나 자신의 가난함과 죄스러움을 고백할 때, 비로소 내 마음의 그릇에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와 용서가 가득 채워집니다.
오늘날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신앙생활도 때로 바리사이 시몬처럼 형식적이고 무감각해질 때가 있습니다. "성당에는 꾸준히 나가지만, 내 안에 주님을 향한 감사와 감동의 눈물이 사라진 지 오래되지는 않았습니까?", "내가 지은 죄의 깊이는 잊은 채, 타인의 조그마한 허물과 실수를 바라보며 차갑게 비판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용서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내 의로움을 자랑할 때, 신앙은 의무와 껍데기만 남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향해 눈을 맞추시며 당신의 발치로 부르십니다. 내가 지나온 삶의 허물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영적 상처와 죄를 안고 주님 발치에 엎드릴 때, 주님께서는 비난의 눈초리가 아닌 따뜻한 위로의 손길로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네 죄를 용서받았다."라는 주님의 음성이 우리 마음의 메마름을 녹여줍니다.
하느님 대전에서 끝까지 자비와 구원을 얻는 사람은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을 겸손히 인정하고 주님의 자비를 청하는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의 내가 되었습니다"라는 사도 바오로의 고백을 마음에 품읍시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머무르십시오.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참된 구원의 평화 속에서, 오늘 하루도 온 마음으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마음 모아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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