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8월 19일 연중 제20주간 수요일
우리는 살아가면서 은연중에 ‘세상의 계산법’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일한 만큼 받아야 하고, 투자한 만큼 거두어야 한다"는 논리는 공정해 보이지만, 때로는 우리의 마음을 팍팍하게 만들고 타인을 시기하게 합니다. 열심히 사는데도 나보다 늦게 시작한 이가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 우리 마음속에는 억울함과 불만이 피어오르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포도원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뙤약볕 아래서 땀 흘린 일꾼들과, 마칠 때가 다 되어 겨우 한 시간 일한 일꾼들에게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값을 건넵니다. 그리고 이에 불평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 신앙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질문을 던지십니다. “내가 후하다고 해서 시기하는 것이오?”(마태 20,15). 이 비유는 인간의 이기적인 계산법을 넘어, 소외되고 뒤처진 이들을 끝까지 찾아내어 똑같은 사랑으로 채워주시는 하느님의 압도적인 자비를 선포합니다.
오후 다섯 시에 들어온 이들은 게을러서 논 것이 아니라, 세상의 고용 시장에서 선택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던 소외된 이들이었습니다. “아무도 우리를 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마태 20,7)라는 그들의 대답처럼, 주인은 그들의 노동 시간이 아니라 그들이 오늘 밤 가족에게 가져가야 할 양식을 걱정했기에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베푼 것입니다.
아침 일찍 온 일꾼들은 주인의 처사에 분통이 터졌지만, 그들은 치명적인 진실 하나를 놓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침 일찍 주인에게 간택되어 온종일 굶주릴 걱정 없이 안전한 포도원 안에서 일할 수 있었던 ‘선택의 은총’입니다. 반면 오후 다섯 시에 온 이들은 온종일 극심한 불안과 절망 속에서 장터를 헤매던 이들이었습니다. 주인의 한 데나리온은 노동의 대가가 아니라, 그 절망을 채워주는 ‘자비의 선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아침 일찍 온 일꾼의 태도를 취하곤 합니다. "내가 봉사를 얼마나 많이 했는데"라며 공로를 내세우고, 뒤늦게 회개하고 돌아온 이들을 시샘합니다. 그러나 구원과 은총은 우리가 땀 흘려 얻어내는 성과급이 아닙니다. 우리가 먼저 부르심을 받아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이미 거대한 특권이자 은총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세상에서 상처받고 흩어진 가련한 이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는 ‘참된 목자’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양 떼를 돌보기는커녕 자신들의 배만 채웠던 지도자들을 꾸짖으시며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나 이제 내 양 떼를 찾아내어 보살펴 주겠다”(에제 34,11).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 사회는 철저하게 ‘능력 중심’의 사회이며, 생산성이 떨어지면 쉽게 소외당합니다. 이러한 냉혹한 계산법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괴감과 불안을 안고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포도원에는 마감 시간이 없으며, 세상의 문이 닫혔을 때 하느님의 포도원 문은 가장 활짝 열립니다. 주님은 세상이 보지 않는 여러분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여기시며, 여러분의 부족함을 당신의 후한 자비로 넘치도록 채워주십니다.
“자비롭고 후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세상의 인색한 계산법에 길들여져 주님이 베푸신 사랑을 망각하고, 이웃에게 주어지는 은총을 시샘했음을 뉘우치나이다. 세상에서 선택받지 못해 서성이던 저희를 아무 조건 없이 불러주셨으니 그 부르심 자체에 감사하게 하소서. 오늘 모신 성체의 힘으로 저희의 좁은 마음을 넓혀주시고, 아직도 소외되어 있는 이웃들에게 먼저 다가가 주님의 후한 자비를 전하는 참된 목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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