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8월 10일 성 라우렌시오 부제 순교자 축일


8월의 뜨거운 태양이 대지를 달구는 오늘, 우리는 교회의 위대한 부제이자 순교자이신 성 라우렌시오 축일을 맞이합니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흐르는 이 무더위처럼, 우리의 일상 역시 숨이 턱턱 막히는 고단함으로 가득할 때가 많습니다. 가족을 위한 끊임없는 희생, 직장에서의 인내, 내 권리를 양보해야 하는 억울한 순간들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 마음속에는 “왜 나만 이렇게 손해 보고 살아야 하나?” 하는 지친 탄식이 피어오르기도 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고단한 희생의 길을 걷고 있는 우리에게, 참된 생명과 풍요로움으로 나아가는 하늘나라의 역설적인 법칙을 선포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이 비유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실패가 아니라, 세상을 살리는 풍성한 열매가 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밀알이 껍질을 깨고 땅속에서 녹아 없어질 때 비로소 수많은 이삭이 돋아나듯,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목숨을 십자가 위에서 내어주심으로써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려는 우리에게도 세상적인 목숨에 연연하지 말고 십자가의 길을 함께 걷자고 초대하십니다.

이 내어줌의 신비는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통해 더욱 구체화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2코린 9,6)라고 말하며, 하느님께서는 억지로가 아니라 ‘기쁘게 베풀어 주는 이’를 사랑하신다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이웃을 위해 내어놓는 작은 정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더 큰 씨앗과 빵으로 자라나게 하시는 은총의 통로가 됩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움켜쥐고 쌓아 올리는 삶을 성공이라 여깁니다. 그래서 나를 낮추고 고집을 꺾어야 하는 ‘죽음’의 순간을 마주하면 두려워하며 회피하려 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밀알의 죽음은 패배가 아니라 더 큰 생명으로 나아가기 위한 거룩한 내어놓음입니다. 단단한 껍질을 유지하는 밀알은 썩지는 않겠지만, 영원히 홀로 남을 뿐입니다. 껍질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을 때 비로소 그 안에서 수십 배의 새로운 생명이 시작됩니다.

교회의 보화였던 성 라우렌시오 부제가 바로 이 밀알의 삶을 사셨습니다. 로마의 박해자들이 교회의 보물을 바치라고 협박했을 때, 성인은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데려가 “이들이 바로 교회의 영원한 보물입니다”라고 선포했습니다. 결국 숯불 석쇠 위에서 타들어 가는 참혹한 순교를 당하면서도 기쁘게 목숨을 바친 성인의 희생은,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빛나는 신앙의 열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인처럼 불타는 석쇠 위에서 순교할 기회는 흔치 않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나만의 작은 ‘일상의 석쇠’를 마주합니다. 늦은 밤 지친 몸으로 돌아와 아픈 가족을 위해 다시 앞치마를 두를 때, 직장에서 억울한 비난을 받았지만 평화를 위해 인내할 때, 소외된 이웃을 위해 기쁘게 내 지갑을 열어 나눌 때, 우리는 지금 내 삶의 자리에서 밀알 하나를 땅에 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고집을 부리면 주변이 상처받지만, 내가 주님 안에서 겸손하게 죽어질 때 내 주변 사람이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느님은 기쁘게 베푸는 이를 사랑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하는 희생과 봉사를 억울한 숙제가 아닌, 하느님의 손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설레는 희망’으로 받아들입시다.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녹이기 위해 오늘 미사 중에 모시는 성체의 힘을 청합시다. 주님은 당신을 섬기는 이들을 결코 홀로 두지 않으시고 존중해 주십니다. 여러분이 남몰래 삼킨 인내의 씨앗들이 가정과 영혼 위에 백 배의 기쁨과 평화로 열매 맺기를 축복합니다.

“생명의 주 하느님, 저희가 이기심과 자존심의 껍질을 움켜쥔 채 홀로 초라하게 살아가려 했음을 고백합니다. 성 라우렌시오 부제의 전구를 청하오니, 저희에게 삶을 기쁘게 내어주는 신앙의 용기를 주소서.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제가 주님 안에서 겸손히 죽어질 때 이웃이 살아난다는 밀알의 신비를 믿게 하소서. 그리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존중받는 참된 제자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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