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8월 6일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


무더위가 절정에 달한 8월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맞이합니다. 반복되는 일상과 경제적 불안, 사그라지지 않는 가족 간의 갈등으로 우리 마음이 짙은 안개 속에 갇힌 듯 답답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를 ‘높은 산’으로 따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슬픔도 집어삼키지 못할 하느님의 눈부신 영광을 우리에게 펼쳐 보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구약의 오랜 기다림이 예수 그리스도의 빛나는 현존 안에서 어떻게 완성되는지 웅장하게 보여줍니다. 다니엘 예언자는 환시를 통해 ‘연로하신 분’의 어좌와 구름을 타고 나타나 영원한 통치권을 받는 ‘사람 아들 같은 이’를 보았습니다. 이는 세상의 모든 악을 이기고 승리할 하느님 나라의 영광을 예고하는 장면입니다. 이 신비로운 천상의 영광은 오늘 복음에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의 모습 위로 찬란하게 구현됩니다. 제자들 앞에서 변모하신 주님에 대해 성경은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2)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 영광스러운 사건이 일어난 ‘시점’입니다. 바로 직전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부활하셔야 한다는 ‘첫 번째 수난 예고’를 하셨습니다. 스승의 죽음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절망하던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앞으로 마주할 십자가의 참혹함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부활과 승리의 영광’을 미리 맛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 눈부신 광경에 도취된 베드로는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태 17,4)라고 외칩니다. 우리 역시 은혜를 체험할 때면 시끄러운 세상 밖을 피해 그 순간에만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구름 속에서 들려온 하느님의 목소리는 제자들의 영적 단잠을 깨우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이 말씀은 산 위의 영광에 머무르지 말고,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저 낮은 땅’으로 예수님과 함께 내려가라는 단호한 명령입니다. 산 위에서의 영광은 안주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라, 산 아래의 고통을 견뎌내기 위한 영적인 에너지 충전소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역시 산 위와 산 아래를 끊임없이 오고 갑니다. 주님의 변모 사건은 내 고통스러운 현실을 당장 마술처럼 없애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도록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변모시켜 주는 사건입니다. 끝이 ‘해피엔딩’이라는 것을 확실히 아는 사람은 영화 중간의 슬픈 장면 때문에 영화 전체를 포기하지 않듯,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기억하며 삶의 십자가를 견뎌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광채를 거두시고 다시 초라한 모습으로 돌아오시어, 무서워 떠는 제자들에게 손을 대며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붙잡아야 할 분은 화려한 기적이 아니라, 내 초라한 현실 한복판에서 나를 어루만지시며 일으켜 주시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살아내야 할 구체적인 ‘인생의 산 아래’는 어디입니까?. 낙심하지 마십시오. 성체를 모신 여러분의 영혼 안에는 이미 해보다 밝은 주님의 광채가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 빛을 품고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아가, 여러분의 따뜻한 말과 선한 행실로 가정과 일터를 또 하나의 ‘거룩한 산’으로 변화시키시길 축복합니다.

“영광의 주 하느님, 저희가 삶의 십자가 앞에서 낙심할 때마다 오늘 산 위에서 보여주신 찬란한 빛을 기억하게 하소서. 은총의 체험 속에만 안주하려 했던 이기심을 깨뜨려 주시고, 일상의 낮고 고단한 자리로 기쁘게 내려가게 하소서. 오직 예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저희의 십자가를 사랑으로 껴안고 영원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아멘.”

댓글

  1. 신부님의 묵상 한줄 한줄이 하느님께서 스포트라이트를 켜고 저에게 들려주시는 말씀같아 위안이 되고 힘이 됩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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