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나를 붙드시는 그분의 손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아주 독특하고, 조금은 충격적인 호칭으로 부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이사 41,14).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당신 백성을 벌레라고 부르시다니요. 이 표현은 우리 인간의 철저한 무력함비천함을 상징합니다. 밟으면 꿈틀거릴 수밖에 없고,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으며,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연약한 존재. 이것이 때로 우리가 느끼는 삶의 무게 앞에서의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세상의 힘 앞에서, 혹은 감당하기 힘든 시련 앞에서 우리는 한 마리 벌레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너는 벌레니까 포기해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돕는다”라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이사 41,13). 전지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지극히 작은 벌레 같은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계십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무력한 벌레였던 이스라엘이 날카로운 타작기가 되어 산들을 부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듭니다(이사 41,15 참조). 메마른 사막이 못이 되고, 마른땅이 샘터가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하느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며 극찬을 하십니다. 그러나 곧이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마태 11,11)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위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열린 하늘 나라의 자녀들은, 비록 세상의 눈에는 벌레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느님의 은총을 직접 입은 존재들이기에 영적으로는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대함은 우리가 가진 능력의 크기나 성공 여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위대함은 ‘하느님께서 나의 오른손을 붙잡고 계시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마태 11,12)고 하십니다. 여기서 ‘폭력’이나 ‘힘’은 물리적인 폭력이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위한 ‘영적인 열정’과 ‘치열함’을 뜻합니다. 벌레와도 같은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면서도, 하느님의 손을 놓지 않으려는 필사적인 매달림, 그 거룩한 욕심을 가진 사람만이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오늘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이십니까? 내 힘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산이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까? 실망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잘나고 강한 사람의 손이 아니라, 스스로 벌레 같음을 인정하며 도움을 청하는 이의 오른손을 잡아주십니다. 

오늘 기도 중에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을 주님께 내어 드립시다. “주님, 저는 약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 제 손을 잡으시면, 저 메마른 광야도 생명수의 샘터로 바뀔 것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구원자,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께서 지금 당신을 돕고 계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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