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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1월 3일 주님 공현 대축일 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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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어린양 새해의 첫 주말을 맞이하는 토요일입니다. 연초의 들뜬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고, 이제 차분히 일상을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유명한, 그리고 우리가 미사 때마다 듣는 그 말을 선포합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요한 1,29). 우리는 이 표현에 너무 익숙해서 무심코 지나치기 쉽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인들의 기대감 속에서 이 말은 꽤 충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들이 기대한 메시아는 로마 제국을 무너뜨리고 이스라엘을 해방시킬 강력한 사자(lion)와 같은 인물이었습니다. 힘과 권력, 심판의 왕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구원자를 가리켜 어린양(Lamb)이라고 부릅니다. 어린양은 연약함의 상징입니다. 천적의 공격을 방어할 강한 이빨과 발톱도 없고, 도망칠 빠른 다리도 없습니다. 그저 털을 깎으면 깎이는 대로, 죽이면 죽어야 하는 침묵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어린양은 구약 시대부터 인간의 죄를 대신해 제단에 바쳐지는 속죄의 제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힘으로 정복하는 ‘사자’가 아니라, 세상의 아픔과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주는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세상은 “남을 밟고 올라서야 산다”고 가르치지만, 예수님은 “내가 죽어야 너희가 산다” 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구원 방식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요한 1서에서 사도는 이렇게 외칩니다.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사랑을 주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1요한 3,1). 우리가 감히 하느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게 자격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없애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희생 덕분에 죄인인 우리가 거룩하신 분의 자녀라는 엄청난 신분증을 얻게 된 것입니다. 미사 중 성체 축성 후, 우리는 사제의 입을 통해 ...

[묵상] 2025년 12월 11일 대림 제2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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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붙드시는 그분의 손 오늘 제1독서인 이사야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아주 독특하고, 조금은 충격적인 호칭으로 부르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벌레 같은 야곱아, 구더기 같은 이스라엘아!” (이사 41,14). 하느님께서 사랑하는 당신 백성을 벌레라고 부르시다니요. 이 표현은 우리 인간의 철저한 무력함 과 비천함 을 상징합니다. 밟으면 꿈틀거릴 수밖에 없고, 스스로를 방어할 힘이 없으며, 땅바닥을 기어 다니는 연약한 존재. 이것이 때로 우리가 느끼는 삶의 무게 앞에서의 솔직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거대한 세상의 힘 앞에서, 혹은 감당하기 힘든 시련 앞에서 우리는 한 마리 벌레처럼 작고 초라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말씀의 반전이 시작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너는 벌레니까 포기해라”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돕는다” 라고 선언하십니다. " 내가 네 오른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이사 41,13). 전지전능하신 창조주께서 지극히 작은 벌레 같은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계십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무력한 벌레였던 이스라엘이 날카로운 타작기가 되어 산들을 부수고 언덕들을 지푸라기처럼 만듭니다(이사 41,15 참조). 메마른 사막이 못이 되고, 마른땅이 샘터가 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를 붙드시는 하느님의 능력 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을 두고 "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마태 11,11)며  극찬을 하십니다. 그러나 곧이어 "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 11,11)라고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로서 위대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통해 열린 하늘 나라의 자녀들은, 비록 세상의 눈에는 벌레처럼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하느님의 은총을 직접 입은 존재들이기에 영적으로는 요한보다 더 위대하다는 것입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