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우리는 조금은 무겁고, 또 그리운 마음으로 오늘 ‘위령의 날’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기억은 먼저 세상을 떠난 부모, 형제, 자매, 배우자, 자녀, 친구들 그리고 우리보다 먼저 하느님의 품을 향해 떠난 모든 영혼을 향합니다. 그들의 빈자리가 주는 아픔과 슬픔은 여전히 우리 가슴 한편에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4)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슬픔을 끌어안으시고, 그 안에서 참된 행복과 위로를 찾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우리의 슬픔이 가장 깊어질 때, 우리는 오늘 제1독서의 욥과 만나게 됩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건강, 재산, 자녀들까지 모두 잃고, 잿더미 위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통은 죽음과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절망의 잿더미 속에서, 욥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신앙의 외침 중 하나를 토해냅니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 … 내 살갗이 이토록 벗겨진 뒤에라도 이 내 몸으로 나는 하느님을 보리라"(욥 19,25-26).
이것은 그저 막연한 희망이 아닙니다. 이것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온 확신의 빛입니다. 욥은 죽음이 끝이 아님을, 이 육신이 먼지로 돌아간 뒤에도 ‘살아계신 구원자’를 내 눈으로 직접 뵙게 될 것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세상을 떠난 이들을 오늘 우리가 기억하며 품어야 할 희망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이토록 담대한 욥의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답을 줍니다. 우리의 희망은 우리의 감정이나 공로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우리의 희망의 근거는 바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우리가 연약하고 무력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심으로써”(로마 5,8) 십자가를 통해 증명된 이 무조건적인 사랑이야말로, 죽음의 권세도 끊어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사랑하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게 되었고, 그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로마 5,10 참조). 그러므로 죽음은 더 이상 우리와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을 갈라놓는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문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의 '참행복 선언'은 바로 이 구원의 문을 통과하여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이들의 초상화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영혼들은 이 땅에서 마음이 가난했고, 슬퍼했으며, 온유하려 애썼고, 의로움에 목말라 했습니다. 그들은 자비로웠고, 마음이 깨끗하고자 했으며, 평화를 이루려 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 땅에서 부족하고 연약하여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 마음 깊은 곳에는 하느님을 향한 거룩한 열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들은 욥이 그토록 갈망했던 순간, 곧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이 “하느님을 볼”(마태 5,8) 그 복된 순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위령의 날’은 슬픔 속에만 머무는 날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뜨거운 희망으로 기도하는 날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 지상의 교회와 하늘의 천상 교회 그리고 지금 정화의 과정을 겪고 있는 연옥의 영혼들이 ‘성인들의 통공’ 안에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고백하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미사의 희생 제사가, 우리가 사랑했던 영혼들이 마지막 남은 허물을 깨끗이 씻고, 욥이 고백했던 ‘살아계신 구원자’의 얼굴을 뵙는 영원한 행복에 하루빨리 이르도록 도와주는 힘이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욥의 굳건한 믿음으로 선포합시다. “나는 알고 있다네. 나의 구원자께서 살아 계심을!”(욥 19,25). 이 희망 안에서, 우리 또한 언젠가 그토록 그리워했던 이들과 함께 하느님의 얼굴을 뵈오며 영원한 위로를 얻게 될 그날을 고대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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