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24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내 안의 전쟁과 세상의 징표를 읽는 지혜

오늘 예수님께서는 아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루카 12,54-56). 

일기예보를 보고 우산을 챙기고, 바람의 냄새로 계절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 우리는 이런 세상의 징표를 읽는 데 익숙하고 지혜롭습니다. 주식 시장의 흐름을 분석하고, 건강 검진 수치를 보며 미래의 질병을 예측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바로 그 똑똑함을 가지고 왜 영적인 현실에는 이토록 무지하냐고 우리를 꾸짖고 계십니다. 우리가 왜 이 시대의 징표, 곧 우리 삶 한가운데 현존하시며 우리를 구원으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세상의 일에는 그토록 민감하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영적인 일에는 이토록 둔감한 것일까요?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 근본적인 이유를 처절한 자기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부의 징표를 제대로 읽지 못하기 이전에, 우리 자신의 내면부터가 분열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외침은 바로 우리 모두의 외침입니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 선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음을 나는 압니다. 나에게 원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좋은 것을 하지는 못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로마 7,18-19).

얼마나 솔직하고 뼈아픈 고백입니까! 머리로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다 압니다. ‘용서해야지’, ‘기도해야지’, ‘겸손해야지’, ‘나누어야지’. 우리는 선을 향한 열망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몸과 마음은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내 안의 또 다른 법이 나를 사로잡아, 내가 원치 않는 죄의 종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기막힌 현실. 바오로 사도는 이 내적 전쟁의 고통 속에서 절규합니다. “나는 과연 비참한 인간입니다. 누가 이 죽음에 빠진 몸에서 나를 구해 줄 수 있습니까?”(로마 7,24)

우리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시대’를 식별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 자신이 먼저 내 안의 이 치열한 전쟁터에서 길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내 안의 선과 악이 뒤엉켜 싸우는 이 혼돈 속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명확한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죄의 안개가 우리의 영적 시야를 가려, 바로 눈앞에 와 있는 구원의 징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절망적인 내전 상태에서 영원히 패배자로 남아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절규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의 탄식은 곧바로 희망의 찬가로 이어집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로마 7,25).

이 내적 전쟁의 유일한 해결책, 유일한 구원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내 힘과 의지만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이 싸움에서, 주님의 은총만이 우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루카 12,57)라고 물으시는 것은, 우리를 단죄하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이 위선과 내적 분열에서 벗어나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루카 12,58)는 말씀은, 마지막 심판의 때가 오기 전에, 바로 ‘지금 이 시대’에, 어서 하느님과 화해하라는 애타는 사랑의 촉구입니다.

내 안의 비참함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바오로처럼 부르짖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구원하실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 화해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비로소 우리는 땅과 하늘의 징조 너머에 있는 시대의 징표, 곧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식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괜찮은 척, 거룩한 척하는 위선을 멈춥시다. 내 안의 전쟁을 주님 앞에 솔직히 내어놓읍시다. “주님, 저는 선을 원하지만 악을 행하는 죄인입니다. 이 비참한 저를 구해주십시오.” 이 정직한 기도가 바로 우리가 하느님과 화해하는 첫걸음입니다. 그때 우리는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 삶에 일어나는 모든 사건들, 기쁨과 슬픔, 만남과 헤어짐, 성공과 실패가 그저 우연이 아니라, 나를 당신께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징표임을 말입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시대의 과제 앞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희에게 당신의 은총을 주시어, 저희 자신과 세상을 올바로 식별하는 지혜의 눈을 열어주소서. 아멘.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묵상] 2025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묵상] 2026년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묵상] 2025년 12월 2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