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29일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오늘은 예수님께서 일상 속에서 가장 친밀하게 정을 나누시며 당신의 피로와 외로움을 달래셨던 ‘베타니아의 세 남매’,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를 함께 기억하는 날입니다. 오늘 제1독서인 요한 1서의 말씀과 복음의 선포는 하나의 거대한 진리로 맞물려 있습니다. 우리가 삶의 숱한 절망과 죽음의 그늘 속에서도 어떻게 ‘부활과 생명’을 미리 맛보며 살 수 있는지, 그 유일한 열쇠가 바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에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사도 요한은 신앙생활의 가장 깊은 본질이자 하느님의 정체성을 한 문장으로 선포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이 사랑은 우리가 먼저 하느님을 사랑해서 얻어낸 대가가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고 나약했을 때, 하느님께서 먼저 당신의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게 해 주신 ‘선행적인 사랑’입니다. 요한 사도는 이 과분한 사랑을 받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삶의 방향을 명확히 제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1요한 4,11-12). 하느님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내 곁의 형제자매를 구체적으로 사랑할 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이 우리 삶에 생생하게 드러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자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베타니아로 달려가십니다. 슬픔에 잠긴 마르타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누구이신지 놀라운 선언을 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요한 11,25). 이 선언은 단순히 멈춘 심장이 다시 뛰는 생물학적 기적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이미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생명을 지금 이 자리에서 살기 시작했다는 선포입니다. 마르타는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고, 이 사랑의 믿음은 결국 죽었던 라자로를 무덤 밖으로 걸어 나오게 만드는 생명의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요한 1서 4장에는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오늘 마르타가 오빠의 죽음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당당하게 부활을 고백할 수 있었던 이유, 그리고 세 남매가 주님을 위해 기쁘게 봉사하고(마르타), 그분 발치에서 말씀을 경청하며(마리아), 죽음에서 살아나 삶으로 주님을 증언할 수 있었던(라자로) 힘의 원천은 바로 주님과 나누었던 ‘완전한 사랑’이었습니다. 주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내가 주님을 사랑한다는 그 확신이 있었기에, 죽음이라는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마저도 그들을 무릎 꿇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거창한 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내 삶의 한가운데 모시고 그분과 다정하게 사랑을 나누는 동행입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짓누르는 모든 불안과 두려움을 요한 사도의 선포처럼 ‘완전한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녹여냅시다. 베타니아의 세 남매처럼 이웃에게 작은 사랑과 환대를 베풀 때, 우리는 이미 무덤의 돌을 치우고 부활과 생명의 기쁨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 저희가 삶의 시련과 두려움 앞에서 당신의 사랑을 의심하고 흔들렸던 약함을 용서하소서. 오늘 베타니아의 세 남매가 보여준 따뜻한 환대와 굳건한 신앙을 저희에게 주소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이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게 하시고,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의 손을 꼭 잡고 오늘 하루 두려움 없이 사랑을 실천하는 복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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