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25일 성 야고보 사도 축일
오늘은 열두 사도 중 한 분이자 요한 사도의 형제이며,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순교의 영광을 입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야고보 사도의 삶을 통해 하느님 나라에서 ‘참된 위대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과연 어떤 잔을 마시는 일인지를 생생하게 가르쳐 줍니다. 오늘 복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다가와 절을 하며 한 가지 청을 올리는 장면이 나옵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당시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면 로마를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강력한 왕이 되실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의 어머니와 두 형제는 세상 권력을 미리 선점하기 위해 일종의 ‘인사 청탁’을 하러 온 것입니다. 이를 지켜본 다른 열 제자들 역시 두 형제에게 크게 불쾌해했습니다. 겉으로는 거룩하게 주님을 따르는 듯 보였지만, 제자들의 마음 밑바닥에는 똑같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 하는 세상적인 야심과 시기심이 소용돌이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철없는 야심을 꾸짖는 대신, 다정하면서도 준엄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2). 두 형제는 그 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큰소리로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상상한 잔은 승리의 축배이자 영광의 잔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마시려는 잔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야 하는 ‘고난과 죽음의 잔’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지배자들처럼 남을 억누르고 군림하는 자리가 결코 하늘나라의 자리가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질서는 세상의 질서와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6.28). 야고보 사도는 훗날 성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주님이 말씀하신 ‘잔’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높은 자리를 탐내는 야심가가 아니었습니다. 제1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가 고백하듯, 자신은 보잘것없는 ‘질그릇’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물’을 담고 있기에 어떤 환난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는 당당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기원후 44년경, 헤로데 아그리파 1세 왕에 의해 칼을 맞아 열두 사도 중 최초로 순교의 잔을 마시게 됩니다. 복음에서 주님께 “할 수 있습니다”라고 했던 그 철없던 맹세가, 마침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주님을 증언하는 위대한 순교의 고백으로 완성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깨지기 쉬운 약한 질그릇들입니다. 내 지위나 재산으로 그릇 겉면을 화려하게 꾸미려 애쓰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주님의 사랑과 복음이라는 보물이 담겨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남들보다 더 높이 올라가려던 야심의 잔을 내려놓읍시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지친 가족과 이웃을 위해 작은 손길을 내어주는 ‘섬김의 잔’을 기쁘게 마십시다. 우리가 낮아지고 섬길 때, 야고보 사도를 하늘나라의 영광으로 이끄신 주님께서 우리 또한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존귀한 하늘나라의 자녀로 높여주실 것입니다.
영광과 섬김의 주님, 저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의 명예와 권력을 탐하며 남들 위에 군림하려 했던 교만을 용서하소서. 성 야고보 사도가 마침내 당신의 고난의 잔을 받아 마셔 첫 순교자가 되었듯, 저희 또한 눈앞의 영광만을 좇지 않고 매일의 삶 속에서 섬김과 희생의 잔을 기쁘게 마시게 하소서. 질그릇처럼 약한 저희 삶 속에 오직 당신이라는 보물만을 가득 채워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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