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23일 연중 제16주간 목요일

오늘 성경 말씀은 우리 영혼이 겪는 깊은 갈증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짚어주고, 그 갈증을 채워줄 하늘나라의 신비를 알아듣는 눈과 귀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가르쳐 줍니다. 오늘부터 제1독서는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시절에 지녔던 순수한 사랑을 애틋하게 추억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처음에 하느님께 온전히 바쳐진 거룩한 첫 열매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와 풍요를 누리게 되자, 그들은 하느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지도자들과 사제들마저 하느님을 찾지 않고 우상을 좇는 기가 막힌 배반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비극적인 모습을 두 가지 악으로 요약하십니다. “그들은 생수의 원천이신 나를 저버렸고, 제 자신을 위해 저수 동굴을, 물이 고이지 못하는 갈라진 저수동굴을 팠다”(예레 2,13).

팔레스티나 지역에서 ‘생수’는 끊임없이 솟아나는 천연 샘물을 뜻하지만, ‘저수동굴’은 빗물을 모아두기 위해 인공적으로 판 바위 구덩이입니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며, 바위에 금이라도 가 있으면 물은 모두 새어 나가 버립니다. 하느님이라는 마르지 않는 샘물을 곁에 두고도, 세상의 재물과 권력이라는 ‘썩고 새어 나갈 인공 구덩이’를 파기 위해 인생의 온 힘을 낭비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고발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군중의 마음이 완고해져서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아쉬워하십니다. 그들은 주님의 기적을 보면서도 믿지 않았고,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들의 고집을 꺾지 않았습니다. 반면, 부족하지만 주님 곁에 머물며 그분의 말씀을 새기려 애쓰는 제자들을 향해서는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너희의 눈은 볼 수 있으니 행복하고, 너희의 귀는 들을 수 있으니 행복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을 보고자 갈망하였지만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갈망하였지만 듣지 못하였다”(마태 13,16-17). 신앙의 신비는 머리가 똑똑하다고 해서 깨닫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 앞에 머무는 이들에게 성령께서 거저 주시는 은총입니다. 매일 미사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는 우리 역시 이 제자들과 똑같은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소음에 눈과 귀를 빼앗기면 영혼은 말라갑니다. 갈라진 저수동굴에는 결코 참된 평화와 안식이 담길 수 없습니다. 오늘 하루, 내 힘으로 채우려 버둥거리던 세상의 구덩이를 과감히 버립시다. 그리고 우리 이름을 부르시는 주님의 세미한 음성에 영혼의 귀를 기울입시다. 주님의 말씀을 깨닫는 여러분의 마음 위로, 영원한 생수의 강물이 가득히 흘러넘치기를 기원합니다.

“생수의 원천이신 주님, 저희가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당신을 두고, 세상의 헛된 욕심이라는 갈라진 저수동굴을 파헤치며 스스로 목말라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저희의 둔해진 눈과 귀를 성령의 은총으로 열어주시고, 매일의 삶 속에서 당신의 현존을 보게 하소서. 오늘 저희가 누리는 신앙의 특권을 기뻐하며, 들은 말씀을 삶으로 실천하는 행복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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