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22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
오늘은 교회가 참으로 아름답고 뜻깊게 기념하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로 높이시며, 이 날을 의무 축일로 격상하셨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절망의 한가운데서 주님을 향한 불타는 사랑 하나로 어둠을 뚫고 나아간 한 여인의 위대한 신앙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복음은 주간 첫날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으로 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두려움에 싸여 문을 잠그고 숨어 있었지만, 마리아를 움직이게 한 것은 그 두려움을 뛰어넘는 ‘사랑’이었습니다. 일곱 마귀가 들려 비참한 삶을 살던 자신을 구원하시고 인간다운 존엄성을 찾아주셨던 예수님, 그분이 사라졌다는 슬픔에 마리아는 무덤가에서 통곡합니다.
천사들이 “여인아, 왜 우느냐?” 하고 묻자 그녀는 대답합니다. “누가 저의 주님을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요한 20,13). 마리아의 관심은 오직 ‘내 사랑하는 주님’이 어디 계시는가뿐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의 고백처럼 “나는 잠자리에서 밤새도록 내가 사랑하는 이를 찾아다녔네”(아가 3,1) 하는 그 간절함이 마리아의 눈물이 되어 흐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마리아의 뒤에 서 계셨지만, 그녀는 눈물에 가려 그분이 주님이신 줄 알아보지 못하고 정원지기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 그분을 옮겨 가셨으면 어디에 모셨는지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모셔 가겠습니다”라는 무모하고도 절절한 사랑의 고백 앞에, 예수님께서는 마침내 그녀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마리아야!”
그 한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습니다. 수많은 군중을 향한 웅장한 외침이 아니라, 고통받던 그녀를 처음 만나 구원해 주셨던 바로 그 다정하고 친밀한 목소리였습니다. 주님이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 마리아를 짓누르던 절망의 어둠이 단번에 걷히고 통곡은 기쁨의 찬미로 바뀝니다.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 말로 “라뿌니!” 하고 외치며 주님 발치에 엎어집니다. 주님은 이론이 아니라 그녀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써, 당신이 여전히 그녀를 알고 계시며 사랑하고 계심을 부활의 생명으로 증언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에게 제자들에게 가서 당신의 부활과 승천 소식을 전하라는 위대한 임무를 맡기십니다. 낙담하여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달려간 마리아 막달레나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부활 증인이 되어 외칩니다.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 그녀의 선포는 단순히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내 이름을 부르셨고, 내가 그분의 사랑을 직접 만났습니다!”라는 뜨거운 삶의 증언이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무덤가에서 울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건강이나 경제적 위기, 깨진 인간관계의 고통 속에서 우리는 절망의 눈물에 눈이 멀어 곁에 와 계신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주님은 지금도 여러분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무개야, 왜 우느냐? 내가 여기 있다. 내가 너를 잘 안다.”
오늘 하루, 내 슬픔에만 갇혀 있던 눈을 들어 나를 부르시는 부활의 주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마리아 막달레나처럼 기쁘게 세상 속으로 달려가, 내 삶의 자리에서 “내가 오늘 주님의 사랑을 만났습니다!” 하고 당당히 고백하는 복된 부활의 증인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부활하신 주 예수님, 오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뜨거운 사랑과 눈물을 저희에게 주소서. 저희가 삶의 어둠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간절히 찾게 하소서. 슬픔에 가려 곁에 계신 당신을 몰라볼 때에도, 다정하게 저희 이름을 불러주시는 당신의 생생한 목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리하여 저희 또한 세상에 기쁘게 달려가 ‘내가 주님을 뵈었습니다’ 하고 증언하는 충실한 부활의 전령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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