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금요일

오늘 전례의 말씀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결코 차가운 규칙에 매몰된 분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나약함과 고통에 깊이 공감하시며, 우리의 눈물을 닦아주시는 ‘자비와 생명의 하느님’이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유다의 현군 히즈키야 왕은 죽음을 준비하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습니다. 이때 그가 취한 행동은 참으로 절박했습니다. 그는 얼굴을 벽 쪽으로 돌리고 주님께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벽을 향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인간적인 수단을 차단한 채,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독대하겠다는 절박한 선택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진실한 눈물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 자, 내가 너의 수명에다 열다섯 해를 더해 주겠다”(이사 38,5). 하느님은 당신이 내리신 결정마저도 자녀의 눈물 섞인 기도 앞에서는 바꾸시는 분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제물이 아니라, 오직 그분만을 의지하며 흘리는 진실한 눈물입니다.

복음에서는 히즈키야가 만난 자비의 하느님을 전혀 알아보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이 등장합니다. 그들은 배고픈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보고 즉각 고발합니다. 그들은 안식일 법의 참된 정신은 잊은 채, 수백 가지 자잘한 규칙이라는 ‘문자의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굶주린 인간의 아픔보다는 규칙 준수 여부만을 따지는 차가운 심판의 눈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향해 호세아 예언서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꾸짖으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마태 12,7-8). 여기서 ‘자비’는 형제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끼고 감싸주는 사랑의 마음입니다.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을 규칙으로 얽매기 위함이 아니라, 지친 이들에게 참된 안식을 주기 위함입니다. 본질인 사랑을 잃어버린 신앙은 성전 마당만 더럽히는 가짜 제물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종교적 일류 선수’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배고픈 제자들의 허기를 채워주듯 우리의 영적 갈망을 채워주시고, 히즈키야의 눈물을 보시듯 우리의 아픔을 돌보시는 다정한 분입니다. 오늘 하루, 이웃을 향해 들이대던 뾰족한 판단의 자를 내려놓읍시다. 바리사이의 차가운 눈이 아니라 예수님의 따뜻한 시선으로 타인의 약함을 품어줄 때, 우리 자신 또한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눈물을 닦아주시는 주님, 저희가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낙심하지 않고 오직 당신만을 향해 기도하는 믿음을 주소서. 종교적인 형식 뒤에 숨어 형제를 쉽게 단죄했던 교만을 용서하시고, ‘내가 바라는 것은 자비’라 하신 말씀을 가슴에 새겨 오늘 저희가 만나는 이들에게 당신의 따뜻한 숨결을 전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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