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7월 16일 연중 제15주간 목요일
오늘 우리는 침묵과 기도, 그리고 하느님과의 깊은 친교를 상징하는 ‘카르멜산의 복된 동정 마리아’를 기억합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세상살이의 고단함 속에서 영적인 갈증을 느끼는 우리 모두를 향해, 주님께서 친히 마련해 두신 가장 안전하고 다정한 피난처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간절한 갈망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이사 26,9).
여기서 ‘밤’은 단순히 해가 진 시간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생에 찾아오는 시련, 마음의 어둠, 그리고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예언자는 그 막막한 어둠 속에서도 세상의 헛된 위로를 찾아 헤매지 않았습니다. 오직 참된 평화를 베푸시는 하느님 한 분만을 그리워하며 깨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카르멜산 역시 엘리야 예언자가 참 하느님을 만나고 성모 마리아의 영성이 깊게 뿌리내린 ‘침묵과 기도의 산’입니다. 잠시 세상의 소음에서 물러나 우리 마음속 카르멜산으로 올라갈 때, 우리는 밤을 밝히는 하느님의 현존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어둠 속에서 주님을 찾는 이들을 향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따뜻한 위로를 건네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우리는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생계의 무게, 가족 부양의 책임, 노화와 질병의 고통, 그리고 내면의 죄책감과 관계의 상처까지. 숨이 턱에 차오를 정도로 지쳐 있는 우리에게 주님은 아무런 조건 없이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자격이 있어야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고생하고 지쳐 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주님은 우리를 품어 안아 쉬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안식을 주겠다고 하신 바로 뒤에, 역설적이게도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9) 하고 말씀하십니다. 쉼을 주신다면서 왜 또 다른 멍에를 지우시는 걸까요?
그 비밀은 멍에의 구조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지방의 멍에는 홀로 메는 것이 아니라, 두 마리의 소가 한 쌍이 되어 함께 메는 구조입니다. 대개 힘이 센 우두머리 소가 한쪽에 서고, 약하고 어린 소가 다른 한쪽에 서서 함께 멥니다. 그러면 밭을 가는 무거운 힘과 방향은 큰 소가 다 감당하고, 어린 소는 그저 곁에서 발을 맞추어 걷기만 하면 됩니다. 곧, 주님의 멍에를 멘다는 것은 내 인생의 수레를 예수님과 한 쌍이 되어 함께 끄는 것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내 힘만으로 그 무게를 버티려 했기에 그토록 지치고 아팠던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 곁에 서서 그분께 삶의 무게를 맡겨 드립시다. 주님과 함께라면 그 멍에는 편하고 그 짐은 가볍습니다.
카르멜산의 성모님은 평생 하느님의 뜻이라는 멍에를 메셨지만,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셨기에 그 마음에는 늘 천국의 평화가 가득하셨습니다. 오늘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며, 우리가 짊어진 모든 걱정과 불안을 주님의 제대 앞에 통째로 내려놓읍시다. 내 힘으로 삶을 통제하려던 아집을 내려놓고, 내 목을 주님의 다정한 멍에 곁에 나란히 밀어 넣읍시다. 주님과 보조를 맞추어 걷는 그 길에서, 여러분의 영혼은 세상이 줄 수 없는 가장 깊고 고요한 안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안식처가 되시는 주님, 세상살이의 고단함과 내면의 불안으로 지친 저희를 당신의 품으로 불러주시니 감사하나이다. 저희가 혼자서 삶의 무게를 버텨내려 버둥거리던 어리석음을 버리게 하소서. 가르멜산의 성모님처럼 침묵 중에 당신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하시고, 다정한 당신의 멍에를 함께 메고 걸음으로써 저희 영혼이 참된 평화와 쉼을 누리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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