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6월 22일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자신에 대한 성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관계의 고질적인 습성 중 하나인 '남을 판단하는 일'에 대해 매우 강력하고도 위트 있는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동시에 제1독서에서는 하느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 살다가 결국 멸망에 이른 북이스라엘의 역사를 보여주며, 오늘 우리가 진정 어디에 시선을 두고 살아야 하는지 깊이 성찰하게 합니다.
예수님은 남의 눈 속에 있는 작은 지푸라기 같은 티는 보면서, 정작 제 눈 속에 있는 거대한 나무 기둥인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 우리의 어리석음을 꼬집으십니다. 타인의 작은 실수는 예민하게 잡아내면서 정작 나의 거대한 죄와 결점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심판하려 할 때, 우리는 사실 하느님의 자리에 앉으려 하는 오만에 빠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하게 경고하십니다.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마태 7,1). 우리가 남에게 들이대는 그 엄격한 잣대는 결국 하느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심판하는 기준이 될 것입니다.
제1독서에서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멸망한 본질적인 이유는 군사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목이 뻣뻣하다'는 것은 자기 성찰이 없다는 뜻으로, 세상의 풍조나 남의 잘못에는 민감하면서도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고 하십니다. 내 안의 들보를 먼저 제거해야만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낼 수 있는 맑고 자비로운 눈을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목적은 남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데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큰 용서를 받은 '들보 투성이' 인간인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형제의 작은 실수를 안쓰러운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자비가 생깁니다. 형제의 잘못은 단죄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아파하며 기도해 주어야 할 또 다른 나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남을 향해 손가락질할 때 나머지 세 손가락은 나 자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몫은 심판이 아니라 오직 사랑과 자기 성찰뿐입니다.
시선을 우리 자신을 향해 돌려봅시다. 나는 오늘 하루 누군가를 비난하고 판단하는 데 나의 에너지를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하느님 앞에서 내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나의 정당함만을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루, 누군가의 단점이 눈에 들어올 때 "주님, 제 눈의 들보부터 보게 하소서"라고 짧게 기도해 봅시다. 내가 먼저 낮아질 때, 우리를 둘러싼 날 선 관계들은 부드러운 하느님의 평화로 채워질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저희의 눈을 가리고 있는 교만과 위선의 들보를 치워주소서. 남의 허물을 찾아내는 날카로운 시선 대신, 저 자신의 부족함을 먼저 깨닫고 뉘우치는 겸손한 마음을 주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심판관이 아니라 사랑의 동반자로 형제들 곁에 머물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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