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6월 20일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우리의 선택
오늘 전례의 말씀은 한 인물의 비극적인 변절과 그에 대비되는 예수님의 평화로운 권고를 동시에 조명합니다. 제1독서의 요아스 임금은 시작은 창대했으나 끝은 비참했던 인물의 전형을 보여주며, 복음은 우리가 왜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하느님께만 뿌리를 내려야 하는지를 일깨워 줍니다.
어제 독서에서 성전을 보수하며 주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을 걸었던 요아스 임금이 오늘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등장합니다. 자신을 임금으로 세워주고 보살펴주었던 스승 여호야다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대신들의 감언이설에 휘둘려 하느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가장 비극적인 장면은 자신을 가르쳤던 스승의 아들 즈카르야 예언자가 하느님의 영에 사로잡혀 올바른 말을 전하자, 그에게 성전 뜰에서 돌을 던져 죽인 일입니다. 성경은 이 비극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아스 임금은 이렇게 즈카르야의 아버지 여호야다가 자기에게 바친 충성을 기억하지 않고, 그의 아들을 죽였다"(2역대 24,22). 하느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을 때 인간은 교만해지고, 당장의 권력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요아스가 하느님 대신 세속의 권력과 우상을 선택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 6,24). 여기서 재물은 단순히 돈을 넘어, 하느님보다 더 나를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 믿는 모든 세상적 의지처를 뜻합니다. 요아스는 하느님 대신 유다 대신들의 지지를 선택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우리 마음이 두 주인 사이에서 분열될 때, 그 틈을 타고 들어오는 것이 바로 걱정입니다. 하느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다는 신뢰가 흔들릴 때, 우리는 내일을 두려워하고 세상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걱정에 짓눌린 우리에게 예수님은 처방전을 주십니다. 하늘의 새와 들의 꽃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기르는 이 없는 새를 먹이시고 가꾸는 이 없는 꽃도 입히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삶의 우선순위를 바로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요아스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하느님의 의로움을 저버렸기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죽어가는 순간에도 진리를 증언한 즈카르야는 세상의 목숨은 잃었을지언정 하늘의 영원한 보물을 얻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나는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요아스처럼 눈앞의 이익 때문에 그 은혜를 잊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마음을 갉아먹는 걱정의 뿌리에 하느님보다 세상의 평판을 더 믿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참된 신앙인은 내일을 걱정하며 매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사는 사람입니다. 요아스처럼 사람들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즈카르야처럼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우리가 먼저 하느님의 뜻을 찾을 때, 우리 삶의 모든 걱정은 주님의 자비 안에서 평화로운 해결점을 찾게 될 것입니다.
“신실하신 주님, 저희가 요아스 임금처럼 은혜를 잊고 배반하는 길에 서지 않게 하소서. 세상의 유혹과 걱정에 마음이 분열되지 않게 하시고, 오직 당신만을 유일한 주님으로 모시어 하늘의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저희의 시선이 늘 당신의 나라와 의로움을 향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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