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싱] 2026년 6월 2일 연중 제9주간 화요일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
오늘은 4세기 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굽히지 않았던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 순교자를 기억하는 날입니다. 로마 성 밖 깊은 숲속에서 순교한 그들의 피는 훗날 그 장소를 거룩한 숲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오늘 전례는 세상 속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영적 소속감과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깊이 일깨워 줍니다.
제1독서에서 베드로 사도는 우리에게 영원한 희망을 상기시킵니다. 우리는 이 땅이 전부인 것처럼 머무를 사람들이 아니라, "의로움이 깃든 새 하늘과 새 땅"(2베드 3,13)을 기다리는 나그네들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다그치며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고 유혹하지만, 사도는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그날을 앞당기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2베드 3,12)라고 권고합니다. 그날을 앞당기는 방법은 거창한 업적이 아닙니다. 주님 보시기에 "티 없고 흠 없는 사람"(2베드 3,14)으로 평화롭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일상의 작은 순간들이 모여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키는 기다림의 힘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세금 문제'라는 교묘한 덫을 놓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데나리온 한 닢을 보시며 명쾌한 답을 주십니다.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르 12,17). 이 말씀은 단순히 세속과 종교의 영역을 나누는 이분법이 아닙니다. 동전에 황제의 초상이 새겨져 있듯, 우리 인간의 영혼에는 하느님의 모습, 곧 하느님의 모상이 새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시간과 재능 그리고 생명은 궁극적으로 하느님께 돌려드려야 할 그분의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는 이 진리를 온몸으로 실천했습니다. 그들은 시민으로서 법을 지켰으나, 하느님의 법과 충돌하는 순간 주저 없이 자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들에게 순교는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온 세상에 선포하는 가장 고귀한 고백이었습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들여다 봅시다. 나는 세상의 질서를 지키는 데만 급급하여, 내 영혼의 진짜 주인인 하느님을 잊고 살지는 않습니까? 나는 오늘 나의 시간과 마음 중 얼마만큼을 하느님께 기쁘게 되돌려드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 속에 살고 있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은 아닙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 내 지갑 속의 돈보다 내 영혼에 깊이 새겨진 하느님의 인장을 더 소중히 여겨 봅시다. 세상의 의무에는 충실하되, 내 마음의 가장 깊은 곳만은 오직 주님만이 머무시는 자리가 되게 합시다.
“주님, 저희가 세상의 질서를 존중하면서도 결코 하느님의 자리를 잊지 않게 하소서. 저희 영혼에 새겨진 당신의 모습을 기억하게 하시고, 오늘 하루 저희의 삶을 온전히 당신께 돌려드리는 향기로운 예물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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