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5월 29일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죽어서 사는 신비
오늘은 한국 교회의 첫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를 기억하는 뜻깊은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봉독한 성경 말씀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더 큰 생명으로 나아가는 '거룩한 통로'임을 장엄하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 등장하는 아흔 살의 노인 엘아자르는 우리에게 신앙인의 품격이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박해자들은 그의 목숨을 아껴주는 척하며, 금지된 음식인 돼지고기를 먹는 시늉만이라도 해서 처벌을 피하라고 유혹합니다. 그러나 엘아자르는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2마카 6,24)라며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는 잠시 더 살기 위해 영혼을 팔기보다, 후손들에게 거룩한 법을 위해 기쁘고 고결하게 죽는 본보기를 남기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조선의 첫 순교자 윤지충 바오로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는 양반이라는 기득권과 목숨을 지킬 기회가 있었음에도, "천주만이 참된 아버지이시다"라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기꺼이 칼날 아래 섰습니다. 시대는 달랐지만, 두 분의 용기는 하느님 우선주의라는 하나의 신앙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생명의 역설을 말씀하십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밀알의 단단한 껍질이 부서지고 형태가 사라지는 죽음의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윤지충 바오로를 비롯한 124위 복자들은 한국 교회라는 척박한 땅에 뿌려진 거룩한 밀알이었습니다. 그분들이 당시의 가치관과 충돌하며 목숨을 내놓았을 때, 세상은 그것을 실패와 소멸이라 불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자리에서 오늘날 600만 한국 천주교 신자라는 풍성한 열매가 맺혔습니다. 이처럼 순교는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삶 속에서 영원히 살아남는 지고한 사랑의 방식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길은 늘 꽃길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오해받고, 소중한 것을 포기해야 하며, 나의 자존심을 죽여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순교자들의 시대가 피의 순교였다면, 오늘날 우리는 땀의 순교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남들이 다 하는 편법을 거절하는 정직함, 나를 비난하는 이에게 먼저 건네는 따뜻한 인사,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소외된 이웃을 위해 내 시간을 내어주는 희생이 바로 우리가 오늘 뿌려야 할 밀알입니다. 내 안의 고집과 이기심이 꺾일 때, 비로소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피어납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요? 나는 엘아자르처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신앙의 본보기를 보이고 있습니까? 나는 오늘 내 삶의 자리에서 어떤 밀알이 되어 죽어가고 있습니까? 순교자들은 죽음이 두렵지 않아서 그 길을 가신 것이 아닙니다. 죽음 너머에 계신 주님의 사랑이 훨씬 더 컸기에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흘린 피와 눈물을 기억하며 깊이 감사합시다. 그분들이 뿌린 밀알이 내 안에서 헛되지 않도록, 오늘 작은 희생 하나를 기쁘게 실천해 봅시다.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저희가 세상의 유혹 앞에서 비겁해지지 않게 하시고, 한 알의 밀알처럼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주님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참된 제자가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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