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4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섬김의 길

사순 시기가 깊어질수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가야 할 길, 곧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더 자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비장한 각오로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제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민망합니다. 스승님은 “죽으러 간다”고 하시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까”를 두고 눈치 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예수님께 부탁을 합니다.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마태 20,21). 이 여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기도할 때 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대가로 주어질 축복, 성공, 남들의 인정이라는 ‘윗자리’를 계산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마태 20,22)라고 말씀하시며 씁쓸해하십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 수난 없는 부활을 꿈꾸는 우리를 향한 뼈아픈 지적입니다.

예수님은 묻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 20,21). 여기서 ‘잔’은 예수님이 겪으셔야 할 고통과 죽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책임을 뜻합니다. 제자들은 멋모르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그 잔을 마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삶에 작은 희생이나 손해, 억울한 상황이 닥치면 그 잔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려 합니다. 사순 시기는 나의 대답이 내 삶의 행동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나머지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냅니다. 그들이 의로워서 화를 낸 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회를 뺏겨서 화가 난 것입니다. 도긴개긴인 제자들을 보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공식을 알려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20,26).  세상의 리더십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부리는가’에 달려 있지만, 하늘나라의 리더십은 ‘얼마나 많은 사람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한 몸값으로 바치러 오셨습니다. 왕으로 오셨지만 비천한 종이 되셨습니다.

오늘 하루, 우리 마음속에 있는 성공의 사다리를 잠시 접어둡시다. 남들보다 앞서가려는 마음, 대접받고 싶은 욕구, 내 공로를 인정받고 싶은 유혹이 올라올 때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내 주변에서 나의 섬김이 필요한 가장 낮은 곳을 찾아봅시다. 윗자리에 앉으려 애쓰기보다, 누군가의 발을 닦아줄 수 있는 낮은 곳으로 내려갈 때,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이 마시던 그 사랑의 잔에 입술을 대는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마태 20,28). 아멘.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묵상] 2025년 10월 14일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묵상] 2026년 1월 8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목요일

[묵상] 2025년 12월 2일 대림 제1주간 화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