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섬김인 게시물 표시

[묵상] 2026년 5월 27일 연중 제8주간 수요일

이미지
  섬김으로 완성되는 신앙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참으로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가지 모습을 마주합니다. 한쪽에는 당신이 겪으실 고난과 죽음을 세 번째로 예고하시는 예수님의 엄숙한 모습이 있고, 그 곁에는 " 스승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에 저희를 하나는 스승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 (마르 10,37)라며 세속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주님은 죽음의 길을 향해 걷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권력의 정상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셈입니다. 이러한 인간적인 갈망 앞에서 제1독서의 베드로 사도는 우리 신앙의 근거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우리는 은이나 금처럼 썩어 없어질 것으로 구원받은 존재가 아니라, 흠 없고 티 없는 어린양 같으신 그리스도의 고귀한 피로 구원받은 존재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명예는 제자들이 탐냈던 것처럼 화려해 보이지만, 결국은 썩어 없어질 씨앗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받아들인 하느님의 말씀은 썩지 않을 씨앗입니다. 꽃은 시들고 풀은 마르지만 영원히 머무르는 주님의 말씀에 뿌리를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높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됩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자리를 탐내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마르 10,38). 주님이 말씀하시는 잔과 세례는 고난과 희생을 의미합니다. 제자들은 그 깊은 의미를 알지 못한 채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호언장담합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영광에는 동참하고 싶어 하지만, 그 길로 가는 필수적인 관문인 십자가는 피하고 싶어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영광만을 쫓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의 고통에도 기꺼이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제자들의 다툼을 보시며 예수님께서는 공동체의 새로운 질서를 선포하십니다. 세상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려 들지만, 하늘나라의 논리는 그 정반대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

[묵상] 2026년 3월 4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이미지
  섬김의 길 사순 시기가 깊어질수록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가야 할 길, 곧 수난과 죽음과 부활에 대해 더 자주,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예수님은 비장한 각오로 세 번째 수난 예고를 하십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제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민망합니다. 스승님은 “죽으러 간다”고 하시는데, 제자들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앉을까”를 두고 눈치 게임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예수님께 부탁을 합니다. “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 (마태 20,21). 이 여인의 모습이 낯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기도할 때 이와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대가로 주어질 축복, 성공, 남들의 인정이라는 ‘윗자리’를 계산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마태 20,22)라고 말씀하시며 씁쓸해하십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 수난 없는 부활을 꿈꾸는 우리를 향한 뼈아픈 지적입니다. 예수님은 묻습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마태 20,21). 여기서 ‘잔’은 예수님이 겪으셔야 할 고통과 죽음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의 책임을 뜻합니다. 제자들은 멋모르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는 세례를 받으며 그 잔을 마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내 삶에 작은 희생이나 손해, 억울한 상황이 닥치면 그 잔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려 합니다. 사순 시기는 나의 대답이 내 삶의 행동과 얼마나 일치하는지 점검하는 시간입니다. 나머지 열 제자가 야고보와 요한에게 화를 냅니다. 그들이 의로워서 화를 낸 게 아니라, 자신들의 기회를 뺏겨서 화가 난 것입니다. 도긴개긴인 제자들을 보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공식을 알려주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

[묵상] 2026년 3월 3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이미지
  살아내는 신앙 사순 시기를 지내며 우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거룩해 보이려고 노력합니다. 기도 시간도 늘리고, 희생도 바칩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이런 겉모습을 예리하게 파고드십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꾸짖으시며, 우리 신앙의 본질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를 짚어주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하느님은 아주 구체적인 명령을 내리십니다.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이사 1,16). 이 씻음은 단순히 성당에 와서 고해성사를 보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진짜 ‘씻음’이 무엇인지 하느님은 설명하십니다. “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 (이사 1,16-17). 진정한 회개는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손과 발의 움직임에 있습니다. 내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억눌렀던 손을 씻고, 그 손으로 이웃의 눈물을 닦아줄 때 우리의 영혼은 비로소 깨끗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을 보며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마태 23,3)라고 탄식하십니다. 우리 역시 이 말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집에서는 화만 내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속으로는 앙심을 품고 살 때가 많습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하느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신앙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하느님과 나 사이의 진실한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내가 뱉은 말 중에 내 삶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정직하게 들여다봅시다. 바리사이들은 사람들에게 “랍비”(스승님)이라 불리는 것을 즐겼고, 잔칫집의 윗자리를 탐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SNS의 ‘좋아요’나 사람들의 인정에 목을 매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