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2일 주님 봉헌 축일
사랑의 제련
오늘은 아기 예수님께서 성전에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주님 봉헌 축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날 초를 축복하며,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셨음을 경축합니다. 또한 자신을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한 수도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봉헌 생활의 날’이기도 합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정화’와 ‘만남’이라는 두 가지 신비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말라키 예언자는 주님께서 성전에 오시는 날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가 오는 날을 누가 견디어 내며 그가 나타날 때에 누가 버티고 서 있을 수 있겠느냐? 그는 제련사의 불 같고 염색공의 잿물 같으리라. 그는 은 제련사와 정련사처럼 앉아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하고 그들을 금과 은처럼 정련하여 주님에게 의로운 제물을 바치게 하리라”(말라 3,2-3).
우리는 흔히 하느님이 오시면 무조건 복을 주시고 편안하게 해주실 거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예언자는 주님이 불과 잿물 같다고 합니다. 불은 금속에 섞인 불순물을 태워 없애고, 잿물은 옷의 찌든 때를 빼냅니다. 이 과정은 뜨겁고 아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를 없애려는 파괴의 불이 아니라, 우리를 순금처럼 깨끗하고 거룩한 존재로 만들기 위한 ‘사랑의 제련’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봉헌된다는 것은, 바로 이 사랑의 불 속에 뛰어들어 내 안의 이기심과 죄의 찌꺼기를 태워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올바른 예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불’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말라키 예언자의 예언이 이루어집니다. “너희가 찾던 주님, 그가 홀연히 자기 성전으로 오리라”(말라 3,1)는 말씀처럼, 아기 예수님이 성전에 들어오십니다. 하지만 하늘이 갈라지는 천둥소리도, 화려한 행렬도 없었습니다. 그저 가난한 시골 부부의 품에 안긴 힘없는 아기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수많은 사람들, 제관들도 그분이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평생을 기다려온 시메온과 한나만이 그분을 알아보았습니다. 시메온은 아기를 받아 안고 감격에 겨워 외칩니다.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 2,30-32). 시메온의 눈은 세상의 화려함이 아니라, 초라함 속에 감추어진 ‘하느님의 빛’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의 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하게 정화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기다리는 사람만이 참된 빛을 알아봅니다.
오늘 우리는 미사 시작 때 축복받은 초를 들고 행렬하거나 기도를 바칩니다. 초는 스스로 타지 않으면 빛을 낼 수 없습니다. 심지가 타들어가고 몸통이 녹아내리는 희생이 있어야만 어둠을 밝힐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성전에,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봉헌하셨듯이, 우리도 오늘 하루 작은 촛불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편안함을 조금 태워 가족을 위해 봉사하고, 나의 자존심을 조금 태워 이웃을 용서할 때, 우리는 말라키 예언자가 말한 “주님께 의로운 제물을 바치는 사람”(말라 3,3 참조)이 될 것입니다. 촛불처럼 자신을 태우는 삶으로 나아갑시다.
오늘 성전에 오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너는 나에게 무엇을 봉헌하겠느냐?” 거창한 것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내 안의 미움, 욕심, 걱정이라는 불순물을 주님의 사랑의 불에 맡겨드립시다. 주님께서 그것을 태워 없애시고, 우리를 순은처럼 반짝이는 빛의 자녀로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이 아기는 계시의 빛입니다”(루카 2,32 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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