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월 23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하느님과 함께 지내기

한 주간을 마무리하는 금요일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긴박하고 드라마틱한 장면 중 하나를 보여줍니다. 바로 원수지간인 다윗과 사울이 동굴에서 마주친 사건입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3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쫓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용변을 보러 들어간 동굴 깊숙한 곳에 하필이면 다윗과 부하들이 숨어 있었습니다.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다윗의 부하들은 흥분하며 속삭입니다. 주님께서 ‘내가 너의 원수를 네 손에 넘겨줄 터이니, 네 마음대로 하여라.’ 하신 때가 바로 오늘입니다(1사무 24,5).

세상의 논리로 보면 다윗이 사울을 죽이는 것은 정당방위이자, 지긋지긋한 도망자 생활을 끝내고 왕이 될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칼을 들어 사울의 목을 베는 대신, 겉옷 자락만 살짝 잘라냅니다. 심지어 다윗은 그것조차 양심에 걸려 괴로워합니다. 다윗이 사울을 살려준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울이 타락하고 자신을 죽이려 할지라도, 그를 심판할 권한은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다윗은 철저히 믿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위대한 용기를 심어 주셨습니다.

동굴 밖으로 나간 다윗은 사울을 부르며 엎드려 절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잘라낸 옷자락을 보여주며 진심으로 호소합니다. 아버님, 잘 보십시오. 여기 제 손에 아버님의 겉옷 자락이 있습니다. 저는 겉옷 자락만 자르고 임금님을 죽이지 않았습니다.(1사무 24,12). 평생 다윗을 미워했던 사울은 이 엄청난 자비 앞에 무너져 내립니다. 그는 목놓아 울며 고백합니다. 네가 나보다 의로운 사람이다. 내가 너를 나쁘게 대하였는데도, 너는 나를 좋게 대하였으니 말이다(1사무 24,18). 칼이 아니라, 다윗의 용서가 사울의 얼어붙은 마음을 찌르고 승리한 것입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유일한 방법은 똑같이 보복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갚아주는 것임을 다윗은 보여주었습니다. 선이 악을 이깁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를 뽑으십니다. 마르코 복음 사가는 그 목적을 명확하게 기록합니다. 그들을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그들을 파견하시어 복음을 선포하게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마르 3,14-15). 가장 먼저 나오는 목적은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원수를 용서할 수 있었던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요? 그가 늘 하느님과 함께 지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마음을 닮았기에 원수까지도 품을 수 있었습니다. 제자로서 우리의 첫 번째 의무는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곁에 머무르며 그분의 마음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에 나가서도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예수님의 향기를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에도 ‘사울’ 같은 존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나를 이유 없이 미워하고, 힘들게 하고, 억울하게 만드는 사람 말입니다. 세상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속삭이며 복수의 칼을 쥐어줍니다. 하지만 오늘 다윗처럼 그 칼을 내려놓읍시다.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우리는 자비의 길을 선택합시다. 우리가 원수를 용서할 때, 우리는 단순히 참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승리를 거두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미워하는 마음을 싹둑 잘라내고 그 자리에 예수님의 마음을 채우는 평화로운 날 되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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