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5일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참된 사랑의 대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우리에게, 어쩌면 우리가 들었던 그 어떤 말씀보다도 가장 어렵고 충격적인 요구를 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사랑을 가르치러 오신 분이 어떻게 ‘미워하라’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요? 이어서 하시는 말씀은 우리를 더욱 움츠러들게 합니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그리고는 가진 것을 다 버리지 않으면 제자가 될 수 없다고까지 하십니다(루카 14,33 참조).

이 말씀은 마치 우리 앞에 거대한 성벽을 세우고 “이것을 넘지 못하면 너는 나를 따를 자격이 없어”라고 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이 엄청난 요구 앞에서 ‘저는 도저히 저렇게 할 수 없습니다’라며 좌절하고 포기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토록 불가능해 보이는 요구를 하시는 걸까요? 정말 우리에게 가족을 미워하고, 고행을 하며, 무소유로 살라고만 하시는 걸까요?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두 가지 비유를 드십니다. ‘탑을 세우는 사람’과 ‘전쟁에 나가는 임금’의 비유입니다.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바로 ‘계산’을 한다는 것입니다. 탑을 세우기 전에 내가 가진 돈으로 완성할 수 있는지 비용을 계산하고(루카 14,28 참조), 전쟁에 나가기 전에 나의 군사력으로 이길 수 있는지 전력을 계산합니다(루카 14,31 참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입니다. “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너의 삶을 건 중대한 결단이다. 그러니 그 ‘대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계산해 보아라.”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대가’는 바로 ‘우선 순위의 완전한 변화’입니다. 그분은 우리 삶의 ‘1순위’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가족, 재산, 심지어 나 자신의 목숨까지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의지하는 ‘우상’이 된다면, 그것을 과감히 ‘미워하라’, 곧 ‘덜 사랑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제1독서인 로마서의 말씀과 완벽하게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져야 할 유일한 빚이 무엇인지 가르쳐 줍니다.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로마 13,8).

우리의 삶을 짓누르는 수많은 빚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빚, 성공에 대한 빚, 사람들의 인정에 대한 빚…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빚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오직 ‘사랑의 빚’만을 지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 13,10 참조). ‘간음하지 마라, 살인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탐내지 마라’는 모든 계명은 결국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한마디로 요약됩니다(로마 13,9 참조).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서 요구하신 그 엄청난 ‘대가’, 곧 가족, 재산, 목숨을 버리는 것은, 우리를 억압하려는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서가 말하는 ‘참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입니다. 탑을 세우는 비용,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용입니다. 내가 가족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며 집착할 때, 우리는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재물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며 움켜쥘 때, 우리는 가난한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내가 내 목숨, 자아, 고집을 하느님보다 더 사랑할 때,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십자가를 져라” 하신 것은, 바로 이기적인 나를 버리고 ‘사랑의 빚’을 갚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라는 초대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지만, 동시에 이기심을 죽이고 참된 사랑으로 부활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예수님을 우리 삶의 ‘1순위’에 모실 때, 우리는 비로소 가족을 더 자유롭게, 더 거룩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재물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나눌 수 있는 부유한 사람이 됩니다.

오늘 주님께서 물으십니다. “너는 너의 삶이라는 탑을 완성할 준비가 되었느냐?” 그 탑의 이름은 바로 ‘사랑’입니다. 그 비용은 ‘나’를 버리고 ‘주님’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 계산 앞에서 두려워하지 맙시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주님의 은총으로는 가능합니다. 오늘 미사 중에, 내 삶의 1순위를 가로막고 있는 나의 ‘가족’, ‘재산’, ‘자아’를 봉헌합시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얻고 싶은 유일한 보물,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으로 우리를 가득 채워주시길 간절히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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