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당신은 ‘한 미나’로 무엇을 하고 있나요?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따르며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루카 19,11) 기대에 부풀어 있습니다. 그들은 로마의 압제를 단번에 뒤엎고, 모든 것을 바로잡아 줄 강력하고 화려한 왕의 나라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그리고 오늘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열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이 비유는 우리의 기대를 완전히 깨뜨립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만 하면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으러 먼 길을 떠나며, 종 열 사람에게 각각 ‘한 미나’(약 석 달 치 품삯)씩을 나누어 줍니다. 그리고 명령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루카 19,13). 이 ‘한 미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공평하게 맡기신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목숨일 수도 있고, 신앙일 수도 있으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재능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미나는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이며, 보관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장사하라고, 곧 불어나게 하라고 주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주인이 돌아와 셈을 합니다. 한 종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남겼습니다. 주인은 “잘하였다, 착한 종아!”(루카 19,17) 하고 극찬하며 열 고을을 다스릴 권한을 줍니다. 다른 종은 다섯 미나를 남겼고, 다섯 고을을 받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종이 나옵니다. 그는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습니다"(루카 19,20).
그는 왜 그랬을까요? 그는 주인에 대해 잘못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루카 19,21). 그는 주인을 믿고 사랑하며 모험에 나서는 대신, 그저 자신이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두려워하며, 가장 안전한 방법인 숨겨두는 것을 택했습니다. 그는 손해는 보지 않았지만, 이익도 내지 못했습니다. 주인의 반응은 냉혹합니다. “이 악한 종아,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넣지 않았더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되찾았을 것이다”(루카 19,22-23). 주인에게는 이 종의 두려움이 게으름이요 불충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나마 갖고 있던 한 미나마저 빼앗깁니다.
우리는 이 악한 종의 모습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신 신앙이라는 ‘한 미나’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우리도 이 종처럼, ‘신앙생활을 하다가 상처받을까 봐’, ‘손해 볼까 봐’, ‘세상에서 뒤처질까 봐’ 두려워서, 우리가 받은 신앙을 주일미사라는 수건 안에 고이 싸 두지는 않습니까? 내 신앙이 내 삶을 변화시키고, 이웃에게 흘러가서 새로운 열 미나, 다섯 미나를 남기는 장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나만의 것으로 안전하게 보관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질문에 대해, 오늘 제1독서 마카베오기가 극적인 답을 줍니다. 여기 일곱 아들과 그들의 어머니가 있습니다. 그들은 오늘 복음의 종들처럼, 왕(주인)이 떠난 시대가 아니라, 오히려 악한 왕(안티오코스)이 그들의 믿음을 빼앗으려 덤벼드는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한 미나’는 하느님의 율법이요, 부활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믿음을 수건에 싸서 숨기고, 목숨을 구걸하며 돼지고기를 먹는 시늉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은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착한 종’처럼, 자신의 목숨이라는 ‘한 미나’를 하느님께 온전히 투자했습니다. 그들은 고문과 죽음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당당히 고백하며, 그 ‘한 미나’를 영원한 생명이라는 수천수만 배의 이익으로 불려냈습니다. 특히 오늘 우리가 주목하는 그들의 어머니는, 일곱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절망하는 대신, 오히려 아들들에게 ‘착한 종’이 되라고 독려합니다. 그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이 박해자를 두려워하지 말고 형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죽음을 받아들여라. 그래야 내가 그분의 자비로 네 형들과 함께 너를 다시 맞이하게 될 것이다”(2마카 7,29).
어머니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 땅의 목숨이라는 ‘한 미나’를 두려움 때문에 수건에 싸 두면, 결국 그것마저 잃게 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기꺼이 되돌려 드릴 때,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것을 다시(2마카 7,23) 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인은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맡기신 ‘한 미나’를 가지고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지 셈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의 신앙을 어떻게 투자하고 있습니까? 두려움 때문에 내 마음속 깊이 숨겨두고 있습니까? 아니면 때로는 손해 보고, 오해받고, 고통스럽더라도, 믿음을 가지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선포하며 치열하게 장사하고 있습니까?
마카베오기의 형제들과 어머니의 용기를 청합시다. 두려움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악한 종’이 아니라, 비록 부족할지라도 주님을 신뢰하며 나의 작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남기기 위해 애쓰는 ‘착한 종’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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