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1월 18일 연중 제33주간 화요일


회심과 굳건함

오늘 우리는 신앙의 여정에서 마주하는 두 가지 강력한 삶의 모습을 만납니다. 한 사람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지만 잃어버린 영혼이었던 ‘자캐오’이고, 다른 한 사람은 죽음 앞에서조차 자신의 신념을 꺾지 않았던 ‘엘아자르’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자캐오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관장이었고, 부자였으며, 키가 작았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그는 동족의 눈에 공공연한 죄인이요, 민족의 배신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마도 평생 수많은 손가락질과 경멸 속에서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 보려고"(루카 19,3) 합니다. 단순한 호기심 혹은 갈망이 그의 인생을 바꾸는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인 작은 키와 세관장이라는 체면을 버리고, 아이처럼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많은 군중 속에서, 그를 비난하는 무리가 아니라, 나무 위에 숨어있는 한 사람, 자캐오를 올려다보시며 그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예수님께서는 “죄인아”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자캐오야” 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습니다. 경멸받던 존재가 인격적으로 불렸을 때, 자캐오는 “얼른 내려와 예수님을 기쁘게 맞아들였습니다”(루카 19,6). 사람들은 투덜거립니다.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군(루카 19,7). 세상의 정의는 언제나 ‘단죄’를 향하지만, 하느님의 자비는 ‘구원’을 향합니다.

그리고 자캐오의 삶이 통째로 바뀝니다. 그는 주님께 선언합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루카 19,8). 이것은 단순한 감동이 아닙니다. 이것은 ‘회심’입니다. 그의 삶을 지배했던 재물이라는 우상을 버리고, 정의와 자선을 실천함으로써, 잃어버렸던 하느님의 자녀라는 진실을 되찾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포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루카 19,9-10).

이제 제1독서 마카베오기 하권에 등장하는 엘아자르를 살펴봅시다. 복음에 등장하는 자캐오가 잃어버린 진실을 되찾은 이야기라면, 엘아자르는 진실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이야기입니다. 엘아자르는 아흔 살의 존경받는 율법 학자였습니다. 그는 왕의 박해로 인해 하느님의 율법이 금지한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받습니다. 그는 당연히 거부합니다. 그러자 그의 오랜 친구들이, 그를 살리기 위해 그럴듯한 타협책을 제안합니다.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2마카 6,21).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가장 교묘한 유혹입니다. ‘진짜로 죄를 짓는 건 아니잖아’,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 ‘적당히 시늉만 하면서 믿음을 지키면 되지’. 그러나 엘아자르는 위선을 단호히 거부합니다. 왜 그는 그러한 시늉조차 할 수 없다고 말할까요? 그는 말합니다.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2마카 6,24). 그에게는 자신의 목숨보다,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진실된 신앙의 모범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는 거짓된 삶으로 부끄럽게 목숨을 연장하느니, 영광스러운 죽음으로 거룩한 율법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를 선택했습니다(2마카 6,28.31 참조).

오늘 제1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지금 진실하게 살고 있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자캐오처럼, 마음 한편으로는 하느님을 갈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재물과 세상의 가치관이라는 돌무화과나무 위에 숨어, 세상과 하느님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엘아자르의 친구들처럼, 신앙을 지킨다고 하면서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시늉만 하는 위선에 빠져 있을 수 있습니다.

자캐오는 예수님을 만남으로써, 죄인인 척 살아가는 것을 멈추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진실된 삶을 되찾았습니다. 엘아자르는 죽음 앞에서, 배교자인 척 하라는 유혹을 거부하고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진실된 삶을 지켜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의 진실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가 숨어있는 나무 아래로 오시어, 우리의 이름을 부르십니다. “아무개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세상이 투덜거려도 괜찮습니다. 얼른 내려와 주님을 기쁘게 맞이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가로막는 재물에 대한 집착, 적당히 하라는 위선의 유혹을 끊어 냅시다. 자캐오의 회심처럼, 엘아자르의 굳건함처럼, 우리의 삶 전체가 오직 하느님 한 분만을 향한 진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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