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5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율법의 종에서 생명의 자녀로
오늘 복음은 안식일의 회당, 바로 그 거룩한 장소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풍경으로 시작합니다. 그곳에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에 시달려, 허리를 펴지 못하고 꼬부라져 있던 여인이 있었습니다.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열여덟 해입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이 여인은 땅만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을 예배하러 회당에 왔지만, 정작 하느님이 계신 저 높은 하늘을 한 번도 올려다볼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러웠을까요? 그녀의 굽은 허리는 단지 육신의 병만이 아니라, 죄와 절망의 무게에 짓눌려 하늘을 보지 못하는 우리 인류의 비참한 모습을 상징하는지도 모릅니다.
바로 그때,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보시고’ 가까이 ‘부르시어’ 말씀하십니다. “여인아, 너는 병에서 풀려났다”(루카 13,12). 그리고 그분께서 손을 얹으시자, 여인은 ‘즉시’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기 시작했습니다. 땅만 보던 인생이 하늘을 보게 된 기적의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감격적인 순간, 이 기적을 보고 분개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회당장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 감히 대들지 못하고 군중을 향해 소리칩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 13,14).
이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그는 하느님의 법, 안식일의 규정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한 영혼이 18년간의 고통에서 해방된 생명의 기적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고통받는 ‘사람’이 아니라, 차갑게 식어버린 ‘규칙’이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 제1독서 로마서의 말씀이 이 회당장의 마음을 꿰뚫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는 '육'을 따라 사는 삶이고, 다른 하나는 '영'을 따라 사는 삶입니다(로마 8,12-13 참조).
여기서 ‘육’이란 단순히 우리 몸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하느님의 뜻을 외면한 채, 자신의 힘과 공로, 인간적인 규칙과 판단에 갇혀 사는 모든 삶의 방식을 의미합니다. 회당장은 바로 이 ‘육’의 법에 갇힌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안식일 법을 지킨다는 자신의 의로움에 갇혀, 정작 안식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자비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죽음으로 이끄는 삶’입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영을 따라 사는 삶’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보여주십니다. 하느님의 영은 생명의 영이시며, 자비의 영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조항보다 한 영혼의 구원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분은 회당장을 꾸짖으십니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저마다 안식일에도 자기 소나 나귀를 구유에서 풀어 물을 먹이러 끌고 가지 않느냐?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딸인 이 여자를 사탄이 무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묶어 놓았는데, 안식일일지라도 그 속박에서 풀어 주어야 하지 않느냐?”(루카 13,15-16).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그 율법의 본질인 ‘사랑과 생명’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무엇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도 저 회당장처럼, ‘나는 매주 미사에 빠지지 않아’, ‘나는 봉헌금을 꼬박꼬박 내’, ‘나는 기도를 열심히 해’라는 나만의 규칙과 의로움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그래서 내 기준에 맞지 않는 다른 형제, 자매를 쉽게 판단하고 비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라, 여전히 ‘육’의 법에 갇힌 종일지도 모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는 것입니다”(로마 8,15). 우리는 더 이상 규칙이 무서워 억지로 따르는 종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허리가 굽은 여인을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부르시며 그 존엄성을 회복시켜 주셨듯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너는 하느님의 소중한 아들이며, 딸이다”라고 매일 속삭여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짓누르고, 하늘을 보지 못하게 우리를 꼬부라뜨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이 과거의 상처이든, 현재의 걱정이든 혹은 남을 판단하는 나의 교만이든, 오늘 십자가 앞에서 주님께 내어놓읍시다. 그리고 우리를 ‘육’의 종살이에서 풀어주시고 ‘영’의 자녀로 살게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아무개야, 너는 그 병에서 풀려났다.” 이 해방의 기쁨 안에서, 우리 모두 허리를 펴고 하느님을 찬양하며, 이웃을 율법의 눈이 아닌 자비의 눈으로 바라보는 참된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갑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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