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6월 9일 연중 제10주간 화요일
소모되어야 맛을 내고, 타올라야 빛이 되는 신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소금과 빛이라는 두 가지 단어로 정의하십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신을 온전히 소모해야만 비로소 그 가치가 드러난다는 데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 등장하는 사렙타 과부의 이야기는 이러한 소금과 빛의 삶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지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소금은 알갱이 형태 그대로 남아 있을 때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합니다. 음식 속에 들어가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져야만 비로소 맛을 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소금이 제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마태 5,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참된 맛은 바로 희생과 겸손입니다. 내가 드러나고 대접받으려 고집할 때 신앙은 그 맛을 잃고 맙니다. 반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내 자존심을 녹여 먼저 화해를 청할 때, 세상은 비로소 우리를 통해 복음의 진한 맛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빛 역시 양초가 자신을 태워 불꽃을 피우듯, 무언가를 소모할 때만 비로소 어둠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주님은 빛을 함지 속에 감추지 말고 등경 위에 놓으라고 당부하시며,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이 사람들 앞을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 5,16)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빛의 목적은 자신을 뽐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선행과 친절이 나를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될 때, 우리는 진정한 세상의 빛이 됩니다.
제1독서의 사렙타 과부는 사실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이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극심한 가뭄 속에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으로 빵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죽으려던 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엘리야 예언자는 마지막 남은 것을 자신을 위해 먼저 내놓으라고 청합니다. 가혹해 보이는 이 요청은 사실 과부를 소금과 빛의 삶으로 초대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과부가 자신의 마지막 생존권인 나의 것을 기꺼이 녹여 예언자를 대접했을 때, 그 집안에는 기적의 빛이 찾아왔습니다. 단지의 밀가루와 기름이 마르지 않았던 것은 그녀가 자기 자신을 먼저 녹여 나눔의 맛을 냈기에 가능했던 은총입니다.
우리도 스스로에게 물어봅시다. 나는 내 형체를 그대로 유지한 채 짠맛만 내려고 고집 피우는 딱딱한 소금은 아닙니까? 나는 오늘 나의 시간과 마음을 조금이라도 태워 누군가의 어두운 하루를 밝혀주었습니까? 세상은 끊임없이 나를 위해 쌓아두라고 유혹하지만, 주님은 기꺼이 녹아들고 타오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렙타 과부처럼 우리가 부족함 속에서도 나를 내어줄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단지에 마르지 않는 은총을 가득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 거창한 선행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누군가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는 소금이 되어보고, 따뜻한 미소로 어둠을 밝히는 작은 촛불이 되어봅시다. 우리의 작은 소모를 통해 세상은 비로소 하느님 아버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제 형체만을 고집하는 딱딱한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아픔 속에 기꺼이 녹아드는 맛깔나는 신앙인이 되게 하소서. 저희의 삶을 사랑으로 태워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되게 하시어, 저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이 세상 끝까지 전해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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