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6월 17일 연중 제11주간 수요일
진실하게 머무는 기쁨
오늘 전례의 말씀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신앙의 형식 너머, 그 안에 숨겨진 뜨거운 본질을 마주하라고 초대합니다. 엘리야의 승천을 지켜보며 그 영성을 구했던 엘리사의 간절함과 은밀한 중에 계시는 하느님을 향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결국 하나의 진리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스승 엘리야가 떠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 엘리사는 끝까지 그의 곁을 지키며 간절히 청합니다.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2열왕 2,9). 여기서 '두 몫'은 단순히 스승보다 뛰어난 능력을 얻겠다는 욕심이 아닙니다. 이는 상속법에 따라 맏아들이 받는 몫을 의미하며, 스승에게 맡겨진 하느님의 사명을 중단 없이 온전히 이어받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입니다. 엘리사가 스승의 겉옷을 들어 요르단 강물을 쳤을 때 기적이 일어난 것은 그 옷이 마법의 도구여서가 아닙니다. 스승이 모셨던 하느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엘리사 안에서도 살아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할 때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연극을 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으려 나팔을 부는 행위는 알맹이 없는 겉옷만을 탐내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은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를 강조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화려하게 기도하는지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골방에서 어떤 진실한 마음으로 서 있는지를 보십니다. 엘리사가 겉으로 드러나는 기적보다 스승의 깊은 영성에 목말라했듯이, 우리도 세상의 인정이 아닌 하느님과의 내밀한 소통에 목말라해야 합니다.
우리 역시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소중한 '믿음의 겉옷'을 물려받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옷을 단순히 거룩해 보이기 위한 장식품으로만 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신앙은 종교적 예절이라는 형식을 지키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엘리사처럼 "스승님 영의 두 몫을 받게 해 주십시오"라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세상이라는 요르단 강 앞에서 그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름 없는 자선을 베풀고 진실하게 기도할 때, 우리 삶 속에는 엘리야의 불 병거보다 더 뜨거운 성령의 기적이 시작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나는 신앙의 겉모양에만 치중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 안의 본질인 영성을 구하고 있습니까?. 누군가의 박수를 기대하며 선행을 베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엘리사가 겉옷으로 강물을 갈랐던 것처럼, 여러분이 오늘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 앞에서 바치는 진실한 기도와 작은 사랑은 우리 앞을 가로막은 거대한 시련의 강물을 갈라놓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허영의 옷을 벗고, 하느님만을 향한 진실함의 옷을 입읍시다.
“주님, 저희가 엘리사처럼 당신의 영성을 간절히 구하게 하소서.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으려는 유혹을 물리치고, 오직 숨어 계신 당신 앞에서 진실하게 머무는 골방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저희가 이어받은 신앙의 유산이 삶의 실천을 통해 살아있는 기적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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