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6월 16일 연중 제11주간 화요일


한계를 넘는 사랑

오늘 전례의 말씀은 인간의 논리로는 가늠하기 힘든 하느님의 파격적인 자비와 그리스도교적 사랑의 정점을 보여줍니다. 어제 우리는 나봇의 생명을 빼앗고 포도밭을 가로챈 아합 임금의 악행을 보았지만, 오늘은 그토록 사악했던 악인조차 품으시는 하느님과 우리에게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명하시는 예수님을 마주하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를 통해 아합의 죄악을 엄중히 꾸짖으시고 비참한 종말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때 기세등등하던 악인 아합이 자신의 옷을 찢고 자루옷을 입으며 단식하는 등 진심으로 자신을 낮추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느님의 반응입니다. 주님께서는 아합이 보인 찰나의 겸손을 보시고 마음을 돌리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아합이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춘 것을 보았느냐? 그가 내 앞에서 자신을 낮추었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내가 재앙을 내리지 않겠다. 그러나 그의 아들 대에 가서 그 집안에 재앙을 내리겠다"(1열왕 21,29). 우리의 시선으로는 그런 악당이 이토록 쉽게 용서받는 것이 불공평해 보일 수 있으나, 하느님은 죄인이 단 한 순간이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길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산상설교의 결론과도 같은 중대한 가르침을 주십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나를 미워하고 상처 준 이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 이런 숙제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악인과 선인에게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하려 노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 아버지를 닮은 완전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은 그 사람의 악행을 정당화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 마음속 복수심이라는 감옥에서 나 자신을 해방하라는 초대입니다. 아합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심판을 유예받았듯이, 우리도 원수 앞에 나를 낮추고 그를 위해 기도할 때 미움이 주는 고통의 사슬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원수 사랑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결단입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사랑할 수 없으니 당신의 사랑을 제 마음에 부어주십시오"라고 청하는 것이 그 위대한 시작입니다.

오늘 하루,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짧은 화살기도 한 번을 바쳐봅시다. 이 작은 기도가 우리를 하느님의 본성에 참여하게 하고, 아합의 대를 넘긴 하느님의 자비를 우리 삶으로 불러오는 소중한 통로가 될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주님, 아합의 작은 겸손도 기쁘게 받아주신 당신의 너그러움을 찬양합니다. 저희에게 원수까지 품을 수 있는 커다란 심장을 주시고, 미움으로 얼룩진 저희의 시선을 거두어 주시어 당신처럼 모든 이를 품어 안는 '완전한 사랑'의 길로 이끌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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