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4월 14일 부활 제2주간 화요일

 

성령을 따르는 삶

어제에 이어 오늘도 우리는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코데모와의 대화를 마주하게 됩니다. 이 대화에서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고 강조하시며, 그 신비가 마치 바람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만물을 흔들고 생명력을 전하듯, 성령의 사람 또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요한 3,12)라고 물으십니다. 율법 학자였던 니코데모는 철저히 땅의 논리에 갇혀 사람이 어떻게 다시 태어날 수 있느냐는 생물학적인 질문만 던졌습니다. 우리 역시 신앙생활을 하며 '이만큼 봉사하면 이만큼 복을 주시겠지'라는 세상의 논리로 계산기를 두드릴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이는 이제 신뢰와 희망, 그리고 조건 없는 사랑이라는 하늘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구리 뱀을 들어 올린 사건을 언급하십니다. 불평하다 뱀에 물려 죽어가던 이들이 장대에 달린 구리 뱀을 바라보기만 해도 살았듯이, 우리 역시 십자가에 드높이 올려진 예수님을 바라봄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스스로 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것입니다. 내 죄와 상처에 매몰되어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죽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바라보면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오늘 제1독서인 사도행전은 성령으로 새로 태어난 이들이 맺은 구체적인 삶의 열매를 증언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라는 기록은 강요된 평등이 아니라, 성령의 바람을 맞은 이들이 내 것이라는 집착에서 자유로워졌을 때 일어난 자발적인 사랑의 기적을 보여줍니다. 바르나바와 같은 이들이 자기 밭을 팔아 사도들 앞에 내놓았을 때 공동체에서 가난한 이들이 사라졌듯, 나눔이 기쁨이 되는 삶이야말로 위로부터 태어난 이들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과연 성령의 사람입니까? 내 주머니와 권리에만 예민하다면 우리는 아직 땅의 사람에 머물러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조금 손해 보더라도 공동체의 평화를 선택하고, 고통받는 형제를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다면 우리는 이미 바람 같은 성령의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니코데모에게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요한 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정해놓은 틀에 갇히지 않습니다. 오늘 하루, 나의 고집과 계획이라는 틀을 조금만 허물어 보십시오. 그 틈 사이로 성령의 신선한 바람이 불어와 여러분의 마음을 흔들고, 진정한 자유와 나눔의 기쁨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 제 시선을 땅에서 들어 하늘을 보게 하소서. 제 소유를 쥐고 있는 손을 펴서 형제들과 나누는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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