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7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아버지의 사랑

사순 제2주간을 마무리하는 오늘, 우리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아름답고도 가슴 뭉클한 이야기인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만납니다. 흔히 ‘탕자의 비유’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작은아들도, 큰아들도 아닌, 끝없이 기다리고 용서하는 자비로운 아버지입니다.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작은아들이 유산을 달라고 한 것은 당시 문화로 볼 때 “아버지, 빨리 죽으세요”라고 저주하는 것과 다름없는 패륜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무례한 요구를 들어주고, 아들이 떠난 뒤에도 매일 동네 어귀에 서서 기다립니다. 마침내 아들이 거지꼴이 되어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이렇게 행동합니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루카 15,20).

어른이 체면 차리지 않고 달려가는 것, 죄지은 자식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것. 이것이 우리 하느님의 바보 같은 사랑법입니다. 하느님은 당신의 체면보다 우리가 당신께 돌아가는 것을 훨씬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입니다. 아버지는 자존심을 버리고 사랑을 택했습니다.

집에 남아있던 큰아들은 돌아온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벌이는 아버지가 못마땅합니다. 그는 불평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루카 15,29).

큰아들의 문제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까다로운 고용주’로 여겼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집 안에 있었지만, 마음은 집 밖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아들은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이 이미 자기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염소 한 마리를 보상으로 받으려는 거래적 신앙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도 '내가 이만큼 봉사했는데 하느님은 왜 복을 안 주시지?' 하며 하느님과 계산하려고 하지는 않나요? 큰아들의 비극은 가족이 아니라 머슴으로 살았다는 점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미카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미카 7,19).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돈은 어디에 썼냐? 여자들과 어떻게 놀았느냐?”라고 추궁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돌아온 아들에게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며 아들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었을 뿐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뉘우치며 돌아가기만 하면, 하느님은 우리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심판관’이 아니라 ‘부모’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십니다.

아버지가 화가 난 큰아들을 달래러 밖으로 나와 간곡하게 권유하는 장면에서 오늘 복음은 끝납니다. 큰아들이 잔치에 들어갔는지 안 들어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 결말은 바로 오늘을 사는 우리 각자가 써 내려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 삶이 돼지들이 먹는 열매조차 먹기 힘든 광야처럼 느껴진다면, 주저 말고 아버지의 집으로 방향을 돌리십시오. 만약 내가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이웃에 대한 시기심과 억울함이 가득하다면, 아버지의 품 안에서 자유를 누리십시오. 하느님 아버지는 오늘 여러분을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아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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