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23일 사순 제5주간 월요일

 

비참과 자비

사순 제5주간의 월요일입니다. 성주간을 한 주 앞둔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강렬한 두 사건을 보여줍니다. 두 사건 모두 '간음'이라는 죄목으로 죽을 위험에 처한 여인들의 이야기입니다. 한 명은 거짓 모함에 빠진 결백한 수산나였고, 다른 한 명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이었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두 원로가 수산나를 고발한 이유는 자신들의 욕망을 채우지 못한 보복이었습니다. 그들은 법을 잘 아는 지도자들이었지만, 그 법을 타인을 죽이는 무기로 사용했습니다. 반면 복음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여인의 죄를 빌미로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우려 합니다.

세상은 종종 정의의 이름을 빌려 타인을 난도질합니다. 하지만 정의 뒤에 숨겨진 인간의 추악한 의도와 위선을 하느님은 꿰뚫어 보십니다. 하느님은 인간이 만든 부당한 판결을 뒤집으시는 분이며, 인간이 감추고 싶은 죄의 뿌리를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사람의 눈은 ‘정죄’를 향하지만, 하느님의 눈은 ‘진실’을 향합니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 예수님의 이 말씀은 인류 역사상 가장 날카로운 성찰의 도구입니다.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은 자신들이 의인의 편에 서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땅바닥에 무언가를 쓰신 후 던지신 이 말씀 앞에, 그들은 비로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봅니다. 나이가 많은 사람부터 하나씩 떠나갔다는 복음의 묘사는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인생을 오래 산 사람일수록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얼마나 많은 허물을 가졌는지 더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시 매일 누군가에 대한 판단과 비난이라는 돌을 손에 쥐고 삽니다. 주님은 오늘 그 돌을 내려놓고, 돌을 던지려 했던 손에 묻은 죄의 먼지를 먼저 보라고 하십니다.

모든 고발자가 떠나가고 예수님과 여인만 남았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장면을 "비참(miseria)과 자비(misericordia)만 남았다"고 표현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죄를 괜찮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죄의 결과가 죽음임을 아셨기에, 당신이 대신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그 비참함을 자비로 덮어주신 것입니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 이 말씀은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라는 해방의 선언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우리를 안주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어둠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강력한 사랑의 힘입니다.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우리는 누구와 비슷할까요? 모함을 받는 수산나인가요, 돌을 던지려던 바리사이인가요, 아니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인가요? 우리는 세가지 모습 모두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산나처럼, 억울할 때는 하느님이 진실을 밝혀주실 것을 믿습니다. 바리사이처럼, 남을 판단하고 싶을 때는 내 손의 돌을 내려놓으며, 붙잡힌 여인처럼, 내가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는 염치가 없어도 주님의 자비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사순 시기는 우리가 단죄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비의 자리로 옮겨가는 시간입니다. 오늘 하루, 누군가의 잘못이 눈에 들어올 때마다 내 마음속의 돌을 하나씩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그리고 나를 단죄하지 않으시고 다시 시작할 기회를 주시는 주님의 따뜻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주님, 제가 쥐고 있는 비난의 돌을 내려놓게 하시고, 당신의 자비로 제 영혼을 씻어 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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