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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 2026년 2월 10일 성녀 스콜라스티카 동정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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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규칙을 이기는 힘 오늘은 베네딕토 성인의 쌍둥이 누이이자 베네딕도 수녀회의 모범이신 성녀 스콜라스티카 를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녀의 축일에 만나는 오늘 복음은 우리 신앙생활의 핵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시비를 겁니다. 그들에게 신앙은 ‘규정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이사야 예언자의 말을 빌려 꾸짖으십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마르 7,6).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기도를 유창하게 하고, 봉사를 많이 하는 것은 훌륭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 모든 행위 속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연민이 빠져 있다면, 그것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마음속에 가득 찬 미움과 욕심을 씻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현대판 바리사이가 되고 맙니다. 입술과 마음의 거리를 좁혀야 합니다. 예수님은 ‘코르반’(Corban)이라는 관습을 예로 들며 바리사이들의 모순을 지적하십니다. ‘코르반’은 ‘하느님께 바친 예물’이라는 뜻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부모를 부양하기 싫을 때, “내 재산은 코르반입니다”, 곧 “하느님께 바치기로 했습니다”라고 선언하면 부모를 부양할 의무가 없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얼마나 교묘합니까? 하느님의 이름을 핑계 삼아 부모 공경이라는 십계명의 참뜻을 짓밟은 것입니다. 우리도 가끔 “나 성당 일 때문에 바빠”라는 핑계로 가족이나 주변의 약한 이들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합니다. 사랑이 없는 제물은 하느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법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오늘 기념하는 스콜라스티카 성녀에 관한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성녀가 오빠 베네딕토 성인과 일 년에 한 번 만나 영적 대화를 나누던 날이었습니다. 날이 저물자, 베네딕토 성인은 일몰 후에는 수도원에 있어야 한다는 수도원 규...

[묵상] 2025년 11월 6일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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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잃은 이의 가치, 되찾은 이의 기쁨 혹시 아주 소중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가 기적처럼 되찾은 경험이 있습니까? 지갑이나 휴대전화 혹은 소중한 반지를 잃어버렸을 때의 아찔함 그리고 그것을 다시 찾았을 때의 안도감과 기쁨을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이 ‘잃어버림과 되찾음’의 비유를 통해,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그분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절절하게 보여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모여드는, 아주 훈훈한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투덜거립니다. “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 (루카 15,2). 그들의 눈에, 죄인들은 ‘잃어버려도 되는’, 상종 못 할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기며, 죄인들과 선을 긋고 그들을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을 향해 그리고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잃은 양 한 마리’와 ‘잃은 은전 한 닢’의 비유입니다. 양 백 마리 중 한 마리를 잃은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놓아둔 채, 한 마리를 “찾아낼 때까지” 온 산을 헤맵니다. 이것은 세상의 계산법이 아닙니다. 99%의 이익을 버리고 1%의 손실을 찾아 나서는, 비합리적이고 무모해 보이기까지 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목자에게는 잃어버린 한 마리가, 이미 안전하게 있는 아흔아홉 마리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그들 전부보다 더 소중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한 마리 양을 찾았을 때, 그는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루카 15,5) 돌아와 이웃과 잔치를 벌입니다. 은전 열 닢 중 한 닢을 잃은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동전 하나를 찾기 위해, 등불을 켜고 온 집안을 쓸며 찾아낼 때까지 샅샅이 뒤집니다. 그리고 한 닢을 찾았을 때, 그녀 역시 벗과 이웃을 불러 모아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루카 15,9) 하고 외칩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주시는 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