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20일 사순 제4주간 금요일

 

불편한 진실과 마주할 용기

사순 제4주간 금요일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우리에게 서글픈 인간의 본성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바로 빛을 시기하는 어둠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보통 착하고 의로운 사람을 보면 박수를 칠 것 같지만, 때로는 그 사람의 의로움이 나의 부끄러움을 들춰내기 때문에 오히려 그를 미워하거나 거부하기도 합니다.

오늘 제1독서인 지혜서는 악인들의 속마음을 적나라하게 파헤칩니다. 의인에게 덫을 놓자. 그자는 우리를 성가시게 하는 자, 우리가 하는 일을 반대하며 율법을 어겨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나무라고 교육받은 대로 하지 않아 죄를 지었다고 우리를 탓한다. 정녕 그의 삶은 다른 이들과 다르고 그의 길은 유별나기만 하다(지혜 2,12.15)

의롭게 살려는 사람은 말로 남을 가르치지 않아도 존재 자체로 주변에 도전이 됩니다. 적당히 타협하며 살고 싶은 이들에게 정직한 사람의 존재는 일종의 심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주위에 누군가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며 '혼자만 그렇게 잘났냐' 하고 냉소적인 마음을 품은 적은 있나요? 그 마음은 사실 내 안의 어둠이 빛을 거부하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그들은 예수님의 고향, 가족, 신분을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익숙함과 편견이 정작 예수님 안에 계신 하느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할수록 위험한 것이 바로 "내가 다 안다"는 생각입니다. 성경도 다 알고, 전례도 다 알고, 하느님은 이런 분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하느님은 우리 마음 안에서 활동하실 틈을 잃어버리십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분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만나야 할 신비이십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했지만 아무도 그분께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요한 7,30). 세상의 악이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결국 역사의 주권은 하느님께 있습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다가 오해를 받고 고통을 겪을 때, '하느님은 왜 가만히 계시는가?' 하고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결코 침묵하시는 것이 아니라, 가장 완벽한 사랑의 기적을 이루실 당신의 때를 준비하고 계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부활로 바뀐 것처럼, 우리의 인내와 시련도 하느님의 때가 되면 구원의 도구가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오늘은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육식을 피하는 금요일입니다. 이 희생은 단순히 음식을 가리는 행위가 아니라, 내 안의 거부감과 판단을 내려놓는 행위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드는 '옳은 소리'나 '바른 사람'을 만난다면 피하지 말고 조용히 묵상해 봅시다. '주님, 저는 왜 저 사람이 불편하게 느껴질까요? 제 안에 고쳐야 할 교만이 있기 때문일까요?', '주님, 제가 주님을 다 안다고 착각하며 제 방식대로 주님을 가두고 있는 걸까요?'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빛 앞에 정직하게 설 때, 세상이 놓은 올가미는 풀리고 우리는 진정한 자유를 얻게 될 것입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요한 7,28).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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