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2일 사순 제2주간 월요일
내어줌의 신비
사순 제2주간의 월요일입니다. 우리는 어제 타보르 산에서 빛나시는 예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 영광의 기억을 가슴에 품고, 다시 우리의 현실로 내려와 사순의 길을 걸어갑니다. 오늘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신앙생활의 가장 높은 경지이자, 하느님의 가장 큰 속성인 '자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다니엘 예언자는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짊어지고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희는 죄를 짓고 불의를 저질렀으며 악을 행하고 당신께 거역하였습니다”(다니 9,5). 다니엘은 의로운 사람이었지만, “저 나쁜 놈들 때문에 우리가 벌을 받습니다”라고 남 탓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공동체의 죄를 ‘저희의 죄’라고 고백하며 하느님의 자비를 청합니다. 자비는 내가 완벽해서 받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얼마나 하느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인지를 처절하게 깨닫는 사람만이 하느님의 자비라는 보물을 담을 수 있습니다. “제 탓이오”라는 겸손한 고백이 자비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높은 목표를 제시하십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카 6,36).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해지거나, 창조주가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닮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분의 마음을 닮는 것, 곧 ‘자비’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자비는 단순히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고통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것입니다. 비판받아 마땅한 사람에게 비판 대신 기회를 주고, 단죄받아야 할 사람에게 용서의 손길을 내미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이 하느님을 닮습니다.
복음의 마지막 구절은 신앙의 경제 법칙을 설명합니다.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되받을 것이다”(루카 6,38). 우리는 하느님께로부터 ‘용서의 큰 되’로 넘치게 받기를 원하면서, 이웃에게는 ‘심판의 작은 되’로 깐깐하게 계산하려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이웃에게 대하는 방식 그대로 우리를 대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내가 이웃을 향해 마음을 닫으면, 하느님의 은총도 내 안으로 들어올 길이 막힙니다. 반대로 내가 손해를 보더라도 너그럽게 내어주고 용서하면, 하느님께서는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루카 6,38) 우리 품에 안겨 주십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되’가 우리를 결정합니다.
오늘 하루, 마음속에 있는 심판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이웃을 보며 “어떻게 저럴 수 있어?”라고 비판하기 전에, 오늘 다니엘 예언자의 기도를 기억합시다. “주님, 저 사람의 허물이 바로 저의 허물입니다. 저를 불쌍히 여겨주시는 것처럼 저 사람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우리가 비판을 멈출 때 평화가 시작되고, 용서를 시작할 때 하느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오늘 우리가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너그러운 이해 한 번이 우리의 영혼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주 저희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고 용서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다니 9,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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