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첫째 가는 계명
사순 시기를 절반 가까이 지나오며 우리의 몸과 마음도 조금씩 지칠 수 있는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 한 사람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마르 12,28). 수백 개의 율법 조항에 파묻혀 살던 그들에게 가장 핵심적인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를 질문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명확하게 대답하십니다. “사랑하여라.”
예수님은 하느님을 사랑하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을 우리 인생의 여러 조각 중 하나로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주일 미사에 한 차례 참석하는 것으로 ‘하느님 몫’을 떼어 드렸다고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생각과 결정, 행동의 중심에 그분을 모시는 것이 첫째가는 계명을 지키는 길입니다. 사랑은 ‘나머지’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전부’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율법 학자가 질문하지도 않은 ‘두 번째 계명’을 덧붙이십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31).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곁에 있는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향하는 사랑은 반드시 눈에 보이는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율법 학자도 이에 동의하며 고백합니다. “‘마음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마르 12,33).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한 몸입니다.
오늘 제1독서 호세아서의 말씀은 참으로 눈물겹습니다. 호세아 예언자는 하느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했던 이스라엘에게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라”(호세 14,2)하고 외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죄를 지었다고 해서 우리를 혼내시려고 매를 들고 기다리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품었던 나의 분노가 풀렸으니 이제 내가 반역만 꾀하는 그들의 마음을 고쳐 주고 기꺼이 그들을 사랑해 주리라”(호세 14,5)하고 약속하십니다.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시작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맺은 열매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 곁에 머물러 있는 것 자체를 기뻐하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배반보다 회복에 관심이 더 많으십니다.
오늘은 주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희생하는 금요일입니다. 단순히 고기를 먹지 않는 규정 지키기에 머물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 내가 무엇을 ‘안 하는가’(금육, 절제)보다 무엇을 ‘더 하는가’(사랑, 자비)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요? 하느님을 생각하며 짧은 화살기도를 한 번 더 바치고, 자신을 아끼듯 내 곁의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더 건네 보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의 율법 학자에게 하신 말씀을 우리에게도 들려주실 것입니다.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마르 12,3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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