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2월 27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예물을 바치기 전에 할 일
오늘은 금요일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육식을 피하고, 우리 안의 욕망을 절제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오늘 예수님께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보다 더 어렵고, 더 근본적인 ‘마음의 금육’을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바로 내 안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멈추는 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십계명의 제5계명 “살인하지 마라”를 심도있게 해석하십니다. “자기 형제에게 성을 내는 자는 누구나 재판에 넘겨질 것이다. 그리고 자기 형제에게 ‘바보!’라고 하는 자는 최고 의회에 넘겨지고, ‘멍청이!’라고 하는 자는 불붙는 지옥에 넘겨질 것이다”(마태 5,22). 우리는 고해성사 때 종종 “저는 남을 죽이거나 큰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칼로 사람을 찌르는 것만이 살인이 아닙니다.
독한 말로 상대방의 인격을 짓밟는 것, 무시하는 눈빛으로 상처를 주는 것, 마음속으로 미워하며 ‘저 사람 좀 사라졌으면’ 하고 저주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영혼의 살인’입니다. 혀는 칼보다 날카로워서, 겉으로는 피가 나지 않지만 상대방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피를 흘리게 합니다. 분노는 ‘마음속의 살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우선 순위를 정해주십니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3-24).
우리는 하느님께 잘 보이기 위해 미사를 드리고, 예물을 바치고, 봉사를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네 형제와 등 돌린 채 바치는 모든 정성이 나에게는 부담스럽다”고 하십니다. 사랑 없는 예배, 용서 없는 예물은 하느님께 닿지 못합니다. 하느님과 나 사이의 종적인 관계는 이웃과 나 사이의 횡적인 관계가 뚫려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예배보다 화해가 먼저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전합니다.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에제 18,21). 세상은 전과자를 영원히 낙인찍지만, 하느님은 다릅니다. 오늘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돌아서면, 과거의 죄는 기억조차 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거룩한 기억상실증’입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우리를 쿨하게 용서해 주시는데, 우리는 왜 형제의 작은 잘못 하나를 잊지 못하고 가슴에 품고 있나요? 내가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나도 누군가를 용서해야 합니다.
오늘 금요일, 고기를 먹지 않는 금육재를 지킬 때 이 지향을 꼭 기억하십시오. “오늘은 내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만 끊는 것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가는 칼인 비난과 분노도 끊겠습니다.” 혹시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기도 중에 혹은 마음속으로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해 주십시오. 그것이 제단에 바치는 어떤 값비싼 예물보다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선물이 될 것입니다.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마태 5,2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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