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2026년 1월 9일 주님 공현 대축일 후 금요일
닿을 수 없는 곳에 닿는 손길
성탄 시기의 끝자락인 주님 세례 축일을 앞둔 금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쳐주시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여줍니다. 당시 나병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천형’(하늘이 내린 벌)이라 불렸고, 사회적으로는 ‘살아있는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가족과 마을에서 격리되어야 했고, 혹시라도 일반 사람들과 마주치면 “나는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서 사람들이 피하게 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누구와도 접촉할 수 없는 철저한 고립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의 나병 환자는 금기를 깨고 예수님께 다가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간청합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루카 5,12). 이 기도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그는 “나를 고쳐주시오”라고 떼를 쓰거나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100% 믿었지만, 그 결과는 전적으로 그분의 뜻에 맡겼습니다.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이라는 단서, 이것이 바로 참된 겸손이자 믿음입니다.
이 절박하고 겸손한 믿음 앞에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행동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만 그를 고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루카 5,13). 유다 율법에 따르면 부정한 사람에게 손을 대면, 손을 댄 사람도 부정해집니다. 사람들은 더러움이 옮을까 봐 그를 피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금기를 깨고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병이 나아서 깨끗해진 다음에 만져주신 것이 아니라, 고름이 흐르고 상처투성이인 상태일 때 그를 어루만져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손길이 닿는 순간, 나병 환자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육신의 병이 낫기 전에, 이미 그의 얼어붙은 마음,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고 혐오의 대상이 되었던 깊은 상처가 먼저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거룩함은 부정을 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정을 삼켜버리고 정화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루카 5,13). 예수님의 이 선언은 오늘 제1독서인 요한 1서의 말씀과 연결됩니다.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고, 하느님의 아드님을 모시고 있지 않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1요한 5,12).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그 생명의 손길이 닿으면 죽음의 병도 물러가고, 영원한 생명이 시작됩니다.
오늘 우리 자신을 돌아봅시다. 우리에게도 남들에게 보이기 싫은 영적인 나병이 있지 않습니까? 죄책감, 수치심, 아무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외로움 같은 것들 말입니다. 우리는 자꾸 그것을 감추려 하고, “이런 모습으론 주님께 못 가” 하며 뒷걸음질 칩니다. 하지만 오늘 용기를 내어 나병 환자처럼 주님 앞에 엎드립시다. “주님, 제 마음이 엉망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는 결코 뒷걸음질 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장 감추고 싶은 그 아픈 곳에 당신의 따뜻한 손을 얹으시며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가 원한다. 이제 깨끗해져라. 너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
오늘 복음의 끝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과 인기를 뒤로하고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루카 5,16)고 합니다. 치유의 힘, 사랑의 힘은 바로 이 하느님 아버지와의 깊은 만남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잠시라도 외딴곳을 찾아 침묵 가운데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내 영혼을 어루만져 주시도록 내어드리는 치유의 금요일이 되기를 빕니다.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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